by invisibleman 2020. 10. 23. 20:59

by invisibleman 2020. 9. 10. 12:36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상황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맞서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은 제로금리정책과 함께 금융자산 매입 등 비관습적 통화정책을 전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Covid-19가 초래한 경제 위기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심한 충격을 초래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총생산의 침체 정도, 실업률, 기업파산, 자영업자들의 파산 등을 금융위기 상황과 비교하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비해 훨씬 강화된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중앙은행은 정책금리의 제로 혹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인하와 양적 완화로 알려진 장기 금융자산 매입 외에도, forward guidance, 민간이 발행한 유가증권의 매입, 중소상공업자를 위한 특별 대출제도에 대한 자금지원, 수익률 곡선 통제 등 비관습적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노력은 대량실업, 중소 상공업자의 대량 폐업 등 경제위기 상황을 호전하는 데는 가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다. Covid-19 경제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투자나 고용의 증가를 초래하지 못하지만,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에서만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은행의 개입이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06년∼2013년까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의장을 역임한 버냉키(Ben Bernanke)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중립적이거나 혹은 이에 가까워 소득과 부의 불균등 같은 실질 변수에 제한적으로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부의 불균등을 심화하는 주된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Bernanke(2015), Monetary policy and inequality. http://www.brookings.edu/blogs/benbernanke/posts/2015/06/01-monetary-policy-and-inequality.)

버냉키의 발언에 포함된 통화정책의 중립성은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화폐와 결합했는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글은 아담 스미스와 페르디난도 갈리아니의 화폐분석을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화폐와 화폐경제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시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economicschrematistics 갈림길에서 선택은 중앙은행의 몫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 아담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아담 스미스의 화폐에 대한 분석은, 이후에 슈페터가 『경제분석의 역사』에서 실질 분석이라 불렀던 방법론적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방법론의 특징은 가치론의 원리에 따라 질서가 형성되는 상품의 공간에 화폐를 교환의 편의를 위해 사후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이다.

스미스가 이러한 입장을 주장한 배경에는 중상주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존재한다. “부는 화폐 혹은 금이나 은으로 이뤄지지 않고 화폐가 구매하는 것으로 이뤄진다.”(국부론 p. 416) 스미스의 체계에서 화폐는, 소비의 대상이 되는 재화로 구성되는 한 국가의 실질적인 부에 포함되지 않는다. 스미스는 부가 임금 노동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통해 생산된 편의품과 필수품 등 물질적 재화로 구성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부를 구성하는 재화들의 교환을 지배하는 가치론과 함께, 노동의 생산성에서 유래하는 잉여생산물의 가치적 표현인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주체인 생산 요소의 소유자들의 합리성이, 자원의 완전고용과 효율적 사용을 보장하도록 시장의 작동을 이끈다. 스미스의 지배노동가치설에 의해 교환가치는 상품의 구매력 사이의 동등성으로 결정된다. 사회 전체에서 연간 이뤄진 거래의 교환가치의 합계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소득으로 분해된다. 사회 전체의 연간 소득은 사회가 생산한 연간 생산물의 교환가치다.  

시장이 재화와 재화 간의 교환비율을 결정하면 실제 교환을 이행함에 있어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편으로서 화폐가 시장에 개입한다. 교환의 매개와 회계단위의 역할을 하는 화폐의 도입은, 재화들이 가치론에 따라 형성하는 체계를 손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폐의 도입은 스미스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초래한다. 모순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가치론의 체계와 화폐의 도입이 공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유래한다. 이 관점은 화폐의 가치가 재화와 재화 간의 교환처럼, 화폐와 재화 간에도 가치론의 원리에 따른 등가 교환이 이뤄진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것은 화폐가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임금 노동의 투입을 통해 생산되는 재화를 이용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스미스의 화폐는 보편적인 욕망의 대상. 휴대와 운반의 편리성, 장기 보관 가능성, 가분성 등의 성질을 가지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금속화폐여야 한다. 동시에, 다른 재화와 동일하게 가치론의 분석대상이 되는 생산과정 혹은 유통과정을 거친다는 사실로 인해 화폐는 가치 측정의 불변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모순의 두 번째 요소는 화폐가 가치론의 원칙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재화이기는 하지만 소비의 대상이 되는 재화를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구매력의 담지자일 뿐 직접 소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부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유래한다. 아래에서 인용된 문장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스미스는 교환가치와 소득을 같은 것으로, 소득은 화폐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화폐는 교환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유통의 거대한 바퀴는 그것에 의해 유통되는 재화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사회의 소득은 이 재화들로 이뤄지지 재화들을 유통하는 바퀴는 포함하지 않는다. 사회의 총소득이나 순소득을 계산할 때, 화폐와 재화의 연간 총 유통액에서, 총소득이나 순소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화폐의 총가치를 제외해야 한다.” (국부론, p. 274)

가치를 가지는지 여부가 불명확해진 화폐는 경제적으로 결정되지 못한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는 개인들이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해서 일정 양의 화폐 잔고를 보유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 체제에서 화폐의 도입이 초래하는 모순은 결국 중상주의에 대한 반대입장으로부터, 화폐의 부재를 전제한 상황에서 가치론의 원칙에 따라 가장 단순한 경제의 질서를 이론적으로 탐구하다 실천적인 필요에 의해 공동의 그리고 유일한 교환의 매개를 도입함에 따라 발생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가치의 일반 원칙을 이용해 화폐의 가치를 도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 실패는 가치론의 원칙을 먼저 구성하고 그에 맞춰 화폐를 도입하는 스미스의 방법론이 화폐경제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화폐의 가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화폐를 매개로 사용하는 교환이 실현되기 위해서 화폐의 수요가 일정 수준 유지되어야 한다. 스미스는 화폐의 수량과 부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 것을 우회한다. 스미스는 화폐의 양이 화폐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스미스의 관점에 의하면, 부의 크기는 한 국민경제에서 연간 생산되는 재화의 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통화량의 변화가 부의 크기 변화를 초래하지 못한다. 그리고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부의 크기일 뿐 통화량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했다.

한 국가가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면, 그 국가에서 순환하는 화폐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화폐의 도움으로 순환하는 소비 가능한 재화는 경우에 따라 많거나 혹은 적은 양의 금속화폐를 대가로 교환될 것이다. 한 국가의 실질적인 풍요함 혹은 빈곤은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풍부함 혹은 희소함에 좌우된다”. (국부론 p. 408)

스미스에 의하면, 부가 증가하면, 주어진 통화량을 구성하는 각 주화와 교환되는 부의 수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주화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리고 화폐의 주조의 원료가 되는 금과 은을 수입하는 사업의 수익성이 증가한다. 부가 증가하기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부의 증가로 인해 화폐의 가격과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부의 크기가 변하지 않은 경우에는, 통화량과 화폐의 실질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역의 관계 역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스미스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특정 시기 한 국가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총량이 노동과 토지를 이용해서 생산한 연간 생산물 총량을 유통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인 백만 스텔링까지 올라갔다고 가정하자. 얼마 후 각양각색의 은행들이 지불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백만 파운드 한도로 무기명 어음을 발행해 각자의 금고에 20만 파운드를 보관한다고 가정하자. 결과적으로 금과 은을 주조해서 만든 주화 80만 파운드와 100만 파운드의 은행 발행 어음이 유통될 것이다. 혹은 주화와 지폐로 구성된 180만 파운드가 유통될 것이다. 해당 국가에서 노동과 토지의 연간 생산물을 유통해서 적절한 소비자에게 배분하기 위해 은행의 무기명 어음 발행 전에 100만 파운드가 필요했다면, 토지와 노동의 연간 생산물은 은행의 무기명 어음 발행으로 단번에 증가할 수 없다. 은행의 무기명 어음 발행 이후에도 연간 생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100만 파운드로 충분하다. 판매하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의 양이 이전과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구매와 판매를 위해서 같은 양의 화폐가 필요할 것이다. 유통의 운하는 이전과 동일한 채로 있을 것이다. 상정한 대로 100만 파운드는 이 운하를 채우는 데 충분할 것이다. 이 금액 이상을 운하에 붓는다면 이 초과 화폐량은 운하에서 흐르지 않고 운하 밖으로 넘칠 것이다. 180만 파운드가 운하에 투입됐다. 그 결과로 해당 국가의 유통에서 사용될 수 있는 100만 파운드를 초과하는 80만 파운드가 범람하게 된다. 범람하는 금액이 국내에서 사용될 수 없다고 해도, 이 금액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기에는 가치가 너무 크다. 이 금액은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수익성 있는 사용처를 찾아 해외로 보내질 것이다. 하지만, 지폐는 국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발행한 은행과 법을 통해 지폐를 사용하는 지불이 이행될 수 있는 국가에서 멀리 떨어져서는, 지폐는 사회일반의 지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금과 은은 최대 80만 파운드까지 나라 밖으로 보내 질 것이다. 국내 유통의 운하는 이전에 채우던 주화 백만 파운드 대신 지폐 백만 파운드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국부론, p. 278~279)

스미스는 주화를 이용하는 부의 순환이 균형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은행이 지폐를 추가적으로 발행한다고 상정한다. 스미스의 주장은 지폐의 추가 발행 수량은 부의 순환에 참여하고 있는 교환의 매개인 주화의 수량에 추가되지 못한다. 추가된 지폐는 오히려 해당 금액에 상응하는 주화를 대체하고 그로 인해 상품들의 화폐가격이 변화하지 않는다. , 스미스의 체계에서는 부를 구성하는 상품의 수량에 대응하는 주화의 수량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은행이 추가로 발행한 지폐가 주화를 대신하면서 추가된 금액에 해당하는 주화가 사용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주화에 사용된 금과 은은 가치를 감안하면, 주화가 사용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은 없다. 수출을 통해 해외에서 새로운 수요를 발견한다. 이러한 스미스의 논의에는 발행할 수 있는 지폐의 총량은 대체할 주화의 총액에 한정된다는 것이 함의돼 있다.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지폐를 인식하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 대해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약 유통 중인 지폐가, (연간 생산물을 유통시키기 위해 필요한 금과 은의 합산) 금액을 초과하기만 하면, 초과 금액에 상응하는 지폐는 국외로 보내질 수도 없고 국내 유통에서 사용될 수도 없기 때문에 금이나 은으로 교환되기 위해서 은행으로 즉시 돌아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교환에 필요한 수량보다 더 많은 지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이 초과 금액을 해외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은행에 지급을 즉시 요청할 것이다”. (국부론, p. 286)

, 스미스 체계에서 개인들은 시장에서 관찰되는 재화들의 화폐가격 상승을 통해 화폐량이 과도하다는 것을 깨닫고 거래를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들은 보유하고 있는, 은행이 발행한 무기명 어음의 지급을 은행에 요청한다. 이처럼 연간 생산된 재화의 유통에 필요한 주화의 수량을 초과하는 지폐의 발행은 은행가는 물론 경제주체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상기한 스미스 체계에서 부의 크기와 화폐의 가치 그리고 수량의 관계는 부를 구성하는 재화와 화폐의 교환비율이 통화량 변화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정하고 있다. 이는 교환의 매개인 화폐의 실질 가치가 교환과정에서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환과정 이전에 미리 정해져 있다는 가정으로 이어진다. , 스미스의 체계는, 액면 금액이 인쇄된 화폐가 아니라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의 수량이 인쇄된 상품권이 교환의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고 전제한다.

스미스의 화폐의 순환을 중앙 기관이 발행한 상품권 체제로 생각해보자. 주화들은 교환 대상이 되는 연간 생산물 전체를 배분한 상품권처럼 기능한다. 만약 유통 중인 주화의 수량은 변하지 않는데, 부가 증가한다면, 이는 각 주화에 배정된 상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만약 부의 크기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화로 태환할 수 있는 지폐를 추가적으로 인쇄한다면, 모든 상품들은 이미 처음 있던 금속화폐에 배당되었기 때문에 추가된 지폐는 구매력을 갖지 못한다. 지폐는 상품의 유통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활성화 상태에 처한다. 지폐는 금과의 태환 혹은 주화의 구입을 통해서 상품 유통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 1) 유통과정에 참여중인 주화를 구입할 경우에는 주화의 구매력이 지폐에게 전달된다. 결과적으로 지폐의 순환이 금속화폐의 순환을 대체한다; 2) 지폐를 은행에서 금으로 태환하는 경우에는 주화와 구별되는 금은 교환의 매개로서 작동할 수 없다. 다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국제교역의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화폐를, 화폐 단위에 일정량의 상품이 선험적으로 배정된 일종의 상품권으로 해석하면, 앞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우회했던 화폐의 가치문제는 해결된다.

 

 

중상주의에 반대하는 관점을 기반으로 부를 소비할 수 있는 재화로 규정하고 재화 간의 교환원리를 정한 가치론의 구조 속에 화폐를 통합하려는 스미스의 이론적 기획은 화폐 경제를 분석하는 데 실패했다. , 스미스의 화폐분석은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했다. 상품에게 적용된 가치이론도 화폐의 가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스미스는 화폐의 가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를 상품과의 교환비율을 사전적으로 정한 상품권처럼 기능하는 화폐의 개념을 통해 우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품권은 교환과정 이전에 그리고 독립적으로 특정 상품과의 교환비율이 규정된 것으로 보편적 가치척도이자 교환의 매개으로 정의되는 화폐와는 동일시 할 수 없다.

 

 

▣ 페르니난도 갈리아니(Ferdinando Galiani, 17281787)

 

스미스에서 유래한 통상적인 화폐분석의 패러다임을 조감하기 위해, 갈리아니를 다루고자 한다.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25년 이른 1751년에 출판된 저서 화폐에 대하여(Della moneta)”21화폐의 성격과 효용에 관한 논증(Démonstration de la nature de la monnaie et de son utilité)”에서 갈리아니는 화폐의 가치를 가치론으로 설명할 것을 제안했다. 갈리아니의 제안은 스미스가 창시한 경제학의 통상적인 화폐분석 패러다임과 동일하게 보인다. 하지만, 가치론을 먼저 전제하고 화폐를 통합하려 했던 스미스와는 달리, 갈리아니는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먼저 전제하고 화폐의 가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가치론을 제안했다.

 

갈리아니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구조가 이미 형성된 사회를 가정한다. 사회적 분업구조에 대한 가정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화폐의 존재에 대한 가정이기도 하다. , 노동의 사회적 분업구조에 의해 특정 상품 생산에 특화된 생산주체들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자간의 교환을 매개하는 사회적 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갈리아니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가 형성된 사회에서 우선 교환의 매개 역할을 하는 사회적 장치를 소거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교환의 실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각각 다른 세 가지 사회적 장치를 갖춘 공동체 체제, 구매권 체제 그리고 화폐 체제 등 세 가지의 교환경제체제를 제시하는데, 각각의 체제는 순서에 따라 이전의 체제가 제기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제시됐다. 이러한 논리전개 방식은 갈리아니가 화폐를 단순하게 물물교환의 불편함으로부터 직접 도출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17세기와 18세기 정치철학에서, 특히 토마스 홉스나 존 로크 등이 즐겨 언급했던 자연상태를, 상기한 화폐분석의 통상적 패러다임을 수용한 스미스 등 많은 경제학자들이 화폐가 도입되지 못해 사회적 분업체계와 일반화된 물물교환이 결합되어 작동했던 경제와 동일시하던 경향이 갈리아니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갈리아니가,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에 포함되어 생산에 관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경제주체들이, 교환의 과정을 구성하는 사회적 장치 혹은 매개가 적절하지 않아서 경험하는 어려움과 물물교환에서 욕망의 이중적 일치를 충족하는 거래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불편함을 구별했음을 보여준다.

 

 

 

1. 공동체 체제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에서 교환의 매개 역할을 하는 사회적 장치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갈리아니는 우선 공동체 형태의 사회 조직을 제시한다. ,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의 노동의 산물을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동의 상점에 공급한다. 그리고 그 상점에서 각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재화를 원하는 만큼 가져올 수 있다. 갈리아니는 이 체제가 선택받은 자와 덕망이 높은 자들로만 채워진 수도원 같은 곳에서만 가능할 뿐 그렇지 않은 도시와 왕국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언급한다. 갈리아니의 언급은 공동체 체제가 노동의 사회적 분업구조를 갖춘 사회의 재화 교환에 적합한 장치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공동체 체제가 개인의 예산제약 부재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 개인이 상점에 공급하는 것의 가치와 그가 상점에서 취하는 것의 가치 사이에 동등함을 보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개인별 예산제약의 부재는 공동체 체제에서는 그의 능력에 비해 적은 노동을 생산에 투입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생산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타인의 노동의 산물로 살아가려는 성향을 가진 게으른구성원이 초래하는 불공정성 문제와 그로 인해 부지런한사람이 노동의 동기를 상실해 생산량이 줄어드는 비효율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공동체 체제에서 경제주체들에게 예산제약을 강요할 수 없어서 발생한 문제는 개별 경제주체의 생산을 사회에 대한 기여로 평가해 그 가치에 해당하는 만큼, 해당 경제주체가 필요로 하는 타인의 생산물을 배분 받게 하는 사회적 장치를 도입하면 해결된다. 이 사회적 장치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을 제공하는, 각 재화별로 특화된 별도의 상점들과 각 상점의 운영자로 구성된다. 상점의 운영자는 가게의 회계장부에 자신의 상점에 특정 생산자가 공급한 생산물의 가치와 다른 개별 경제주체들이 상점에서 해당 생산물을 가져가는 대가로 남긴 생산물의 가치를 기입하고 이를 다른 상점 운영자들과 공유한다. 상점이 관리하는 회계 시스템에 의해 경제주체들의 예산제약 준수를 실현하려면, 모든 상점 운영자가 자신의 상점에서 제공하는 재화가 교환되기 전에 해당 재화의 가치는 물론, 해당 재화와 욕망의 이중적 일치 조건을 충족하는 재화의 종류와 가치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은 상품의 개수와 이를 생산하는 경제주체의 수가 크지 않은 소규모 경제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 모든 경제주체는 1개의 상점에 생산물을 공급하고 (n-1)개의 상점에서 구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상점 관리자들은 (n-1)명의 경제주체가 구입한 금액을 다른 모든 상점으로 알리기 위해 (n-1)개의 메시지를 작성해 발송해야 한다. , 모든 가게 운영자들이 작성하는 메시지의 수는 (n-1)2개에 달한다. 만약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상정하고 한 명의 상점 운영자가 하나의 메시지를 처리하는데 6초가 소요된다고 가정하자. 101개의 상점이 있다고 가정하면, 메시지를 작성하고 보내는 데만 하루에 1002*6/3600=16 2/3 시간이 소요된다. , 국내 총생산 규모의 2배 이상의 생산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이 제도는 소규모 경제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2. 구매권 체제

 

공동체 체제에서 경제주체들에게 예산제약을 강요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구매권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개별 경제주체가 생산한 재화를 공동체 체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재화에 특화된 상점에 공급하면, 상점 운영자는 공급받은 재화의 가치에 해당하는 추상적 구매력을 공동의 회계단위로 표시한 구매권을 해당 경제주체에게 발급한다. 구매권은 모든 상점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경제주체들은 상품권에 표시된 추상적 구매력의 범위 내에서 원하는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갈리아니는 구매권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사회적 장치를 도입한다. 그것은 바로 통치자인데, 공동의 회계단위와 추상적 구매력 그리고 모든 재화의 가치가 이 단위로 표시되기 위해서는 통치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 통치자의 지도 하에서 구매권을 이용한 교환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정치기구와 관료제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조세를 징수함으로써 충당될 수 있다. , 모든 상점에서 공급된 재화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일정 가치의 구매권을 통치자에게 받치는 것이다.

구매권에 표시된 금액에 상응하는 구매가 모두 이뤄졌다면, 구매권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모든 구매권의 가치와 모든 상점에 공급된 재화가 소진될 때, 순환 역시 완료된다. 이 두 조건은 균형에서만 확인된다.

 

갈리아니가 파악한 구매권 체제의 단점은 바로 구매권의 가치에 대한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 상점 운영자들은 자신의 상점에 상품을 공급한 경제주체에게 공급된 상품의 가치를 초과하는 가치를 구매권에 기재함으로써, 해당 경제주체가 초과 기재된 가치만큼을 사회에서 더 획득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균형가치를 초과하는 명목가치를 구매권에 기입한 것이 실질적인 사기가 되는 것은 교환을 통해 구매권에 잔존하고 있는 가치가 명목가치와 균형가치의 차이보다 적은 시점부터이다. 이 경우, 해당 경제주체는 그가 사회에 제공한 가치에 상응하는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의 상품을 구매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구매권에는 교환되지 못한 가치가 잔존하게 된다. , 상점 운영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상품의 가치가 과대평가된 경제주체가 균형가치를 초과해 상품을 구매한 만큼, 다른 경제주체들의 구매권은 평가절하된다.

그렇다면, 다른 경제주체들은 해당 상점 운영자에 의한 해당 경제주체의 구매권 가치 과대 평가를 저지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은 이를 저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매권 체제에서 가치결정은 경제주체와 경제주체 간의 직접적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점 운영자에 의한 경제주체의 구매권 가치의 평가 과정에서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경제주체들이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결과적으로 평가절하된 구매권을 가지게 된 경제주체들과 연결된 상점 운영자들은 특정 상점 운영자에 의한, 그와 관련된 경제주체의 구매권 가치의 과대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경제주체가 아닌 그들은 그렇게 이의를 제기할 아무런 경제적 동기가 없다. 상품 j에 대해서 과대평가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상품 j를 전담하는 상점 운영자가, 상품 j 공급자에게 교부된 구매권에 얼마의 가치를 적었든지, 해당 상점에서 상품 j를 구매하고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품 j를 판매하는 상점의 운영자는 지불 금액에 대응하는 수량의 상품 j를 제공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상점 운영자에 의한 관련 경제주체의 구매권 가치 과대평가를 상품 매입으로 간주해, 상품 j의 매입가격은 과대평가로 부풀려졌으나, 판매가격은 원래 균형가격에 머물러 있어 매입가격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상점의 회계장부에 적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상점 운영자는 관련 경제주체로부터 상품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고 구매권에 일정 가치를 기재함으로써 그에 해당하는 교환의 매개이자 추상적 구매력을 발행한다.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교환비율이 사전적으로 정해진 구매권이 균형 수량보다 더 많이 발행됨으로써, 일부 경제주체는 구매권에 기재된 가치가 남아있음에 불구하고 재화와 교환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상점 운영자를 통한 구매권 발행을 통해, 물물교환 체제에서 상품을 수요의 대상으로서의 역할과 교환의 매개 역할을 분리해, 개별 경제주체 간 교환관계를 구매권을 이용한 상점 구매로 대체했기 때문에, 구매권의 과대평가를 막을 방도가 없다. 상품의 교환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상점 운영자는 관련 경제주체의 구매권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피해를 겪지 않는다. 그리고 구매권의 가치가 확대된 경제주체는 실제로 보다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다. 반면 결과적으로 구매권 가치 평가절하를 겪은 경제주체들은 소비해야 할 수량을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지만 이를 시정할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의 결과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구매권 가치를 확대하려고 관련 상점 운영자와 모의하는 현상이 일반화된다.

 

구매권 가치의 과대평가가 일반화되면, 개별 경제주체들의 수요를 제어하던 예산제약이 의미를 상실하고 그에 따라 원래 구매권 가치 산정의 기준이 됐던, 교환과정 이전에 가치론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 균형가치의 개념도 유효성을 잃는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과대평가된 구매권을 가지고 다른 경제주체에 앞서 구매를 실현시키려고 함에 따라, 경제질서는 무너져 모든 교환이 중지되고 경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일정 수준의 가격들의 벡터가 주어졌을 때,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재화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면 경제주체들의 생산 및 소비 활동이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교환의 매개 관련 제도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의 균형은 개별 경제주체들이 원하는 생산과 소비를 실현시킬 수 없음을 갈리아니가 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매권이 교환의 매개로 작용함에 따라 욕망의 이중적 일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물물교환 경제가 소멸되면서, 구매권 체제에서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원하는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했다.

 

하지만, 상기한 구매권 체제에서는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구매권 가치를 과대평가해 예산제약을 무력화해 재화들 간에 형성된 균형 가치체제를 무효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개별 경제주체들이 원하는 생산과 소비를 결국 할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유재량으로 보편적 지불수단을 발행해 자신이 원하는 거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 경제주체와 상점 운영자를 구분했지만, 상점 운영자는 교환을 비롯해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경제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교환의 매개이자 보편적 지불수단의 발행은 개별 경제주체가 자신이 공급한 재화의 명목가치를 구매권에 기재함으로써 이뤄진다.

 

3. 화폐 체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매권 체제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교환 질서를 형성할 수 없었다. 구매권 체제의 문제는 특정 재화를 생산하는 개별 경제주체가 자신이 생산한 재화의 가치에 상응하는, 교환의 매개이자 지불수단인 구매권에 포함될 구매력의 크기를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로 인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구매권의 가치를 과장해서 결정함으로써 어떤 거래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구매권 체제의 문제에 대한 갈리아니의 해결책은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다. 화폐의 도입은 스미스의 경우에서처럼 재화 중에서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특정 성질을 충족하는 재화를 찾는 것이 아니다. 갈리아니에게 있어 화폐의 도입은 화폐발행기관으로서 통치자라는 제도에 대한 가정을 요구한다.

 

유사해 보이기는 하지만, 화폐는 구매권과 구별된다. 구매권은, 경제주체가 상점에 상품을 공급했다는 사실만으로, 수요를 확인하기도 전에, 공급한 상품에 내재해 있는 가치에 상응하는 가치를 표시하는 구매권이 발행된다. 구매권의 발행은, 물물교환 체제에서 모든 상품이 동시에 수행하는 사용가치를 가진 대상의 역할과 교환의 매개 역할 등 이중의 역할에서, 추상적 구매력을 표시하는 구매권을 이용해, 교환의 매개 역할을 분리시킨 것 같다. 교환이 실현되어 구매권에 표시된 가치가 줄어들다가 결국에 소멸되면 구매권도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반면, 화폐는 경제마다 고유한 조건에 따라 별도의 발행기관이 발행해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경제주체들에게 분배한다. 그리고 추상적 구매력을 내포한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발급받은 경제주체들은 그들이 기획한 상업적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이 때 이뤄지는 재화의 구입과정에서 판매자로부터 구매자에게로 이동하는 재화와는 반대로 화폐는 구매자로부터 판매자에게로 이동한다. 화폐는 고유한 효용을 내재하고 있지 않아 소비나 생산의 목적으로 수요되지 않기 때문에 거래 관습이나 시장상황 등을 반영하는 일정 속도를 가지고 시장에서 순환된다. 경제활동 개시 전에 화폐를 발급받은 경제주체들은 해당 시기의 경제활동이 마무리되면 화폐를 발급기관으로 상환한다.

 

구매권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갈리아니가 제안한 것은 통치자가 일정량의 동일한 액면 가격을 가진 보편적 지불수단이자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발행해 상점 운영자들에게 적정량을 배분하는 것이다. 상점 운영자들은 자신의 상점에 재화를 공급하는 경제주체에게 자의적으로 구매권 가치를 기재하는 대신 정부가 사전에 배분한 일정 수량의 화폐를 재분배한다. 그리고 상점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부터 대가로 화폐를 수취한다. 경제의 균형이 실현되면, 그 기간의 경제활동이 마무리될 때, 상점 운영자는 자신이 사전에 배분 받았던 화폐의 수량을 다시 통치자에게 상환할 수 있게 된다. 화폐를 교환의 매개로 사용함으로써 등가교환은 물론 개별 경제주체들의 예산제약도 준수되어 구매권 체제의 문제점은 해결된다.

 

상기한 화폐제도는 통치자의 자의적인 화폐발행이라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구매권 체제에서 상점 운영자들이 자의적으로 구매권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폐체제에서 통치자는 각 상점별로 분배될 화폐 발행규모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 재화에 내재되어 있는 추상적 구매력의 크기를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재화 간 교환비율 또한 통치자의 화폐발행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문제에 대한 갈리아니의 해법은 화폐의 자연적 가치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 통치자의 의지가 아니라 화폐를 구성하는 금과 은에 작용하는 가치의 법칙이 화폐의 발행규모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폐를 가치론의 틀 속에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화폐발행량을 자의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갈리아니는 화폐의 발행을 화폐를 구성하는 재화의 가치에 연동시키기 위해 가치론을 필요로 했다.

 

 

 

 

▣ 시사점

 

화폐를 가치이론의 틀에서 분석하는 스미스의 분석이 이후 근대 경제학의 화폐분석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패러다임은 갈리아니에게서 유래했다. 실제로, 갈리아니의 화폐에 대하여가 출간되고 25년 후 아담 스미스는 갈리아니가 제시한 패러다임을 이용한 화폐분석을 국부론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스미스의 화폐분석은 주류 근대경제학의 화폐분석의 원형으로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리아니의 화폐분석을 상기하는 이유는 갈리아니와 스미스의 화폐분석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정치경제학을 탄생시킨 과학 프로젝트의 이론적 핵심문제는 분리되어 사익을 추구하고 시장이 제공하는 신호에 따라 각자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가, 개인의 행위들의 상호 공존 가능성으로 특징 지어지는 전체적으로 일관되고 결합력을 가진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증명은 가치이론에게 배당된 과제다. 먼저, 화폐 단위로 표현된 부에 대한 중상주의의 주장에 대립되는 관점을 취했던 스미스의 경제체제에서 화폐분석은 가치이론에 종속된다. 반면, 갈리아니의 화폐분석은 오히려 가치이론의 출발점이었다.

 

가치론의 원칙을 이용해 화폐와 화폐경제를 이해하려고 한 것에 대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일단 화폐경제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맑스가 자본에서 단순 순환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화폐경제의 개념을 연구했듯이 이 글에서도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를 토대로 형성된 상품경제를 상정한다. , 생산관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상품의 생산자이자 소유자로서 상품 교환과정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로 구성된 경제를 가정한다.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는 이에 참여하는 무수히 많은 경제주체가 전략적 관점에 따라 자율적 및 독립적인 방식으로 생산과 소비에 관한 선택을 하는 분권형 사회구조를 내포한다. 분권형 사회구조로 인해, 각 경제주체는 다수의 다른 경제주체가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생산측면에서 한 제품의 생산은 이에 소요되는 생산요소를 생산하는 다양한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생산된 제품의 판매 역시 최종 소비자 역할을 수행할 다양한 경제 주체 결정의 의존해야 한다. 생산기술의 발전과 선호체계의 변화에 의해 생산요소의 공급자와 최종 소비자는 항상 생산과 소비 관련 의사결정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경제 주체가 다른 모든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구조를 가진 노동의 사회적 분업구조에서는 상품교환이 개별 경제주체들이 다른 경제주체와 일일이 일대일 계약을 맺는 일반화된 물물교환 방식이 아니라 화폐의 사용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전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화폐의 존재와 사용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가 형성되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따라서, 상품경제는 화폐를 사용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장 단순한 상품 관계라고 하더라도 화폐의 존재를 가정한다. 상품 관계는 항상 화폐 관계다. 상품 공급자로서 경제주체는 화폐 단위로 표시되는 추상적인 가치의 전유를 목적으로 삼는다. 미리 상정하는 일정 규모의 추상적 가치의 개념 없이는 경제주체가 생산활동을 개시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라 상품의 공급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상품 수요자로서 경제주체는 일정 추상 가치를 표시하는 화폐를 획득하는 시점이 중요하다. 재화의 판매 없이 화폐를 획득할 수 있는 경제주체는 상품교환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구매를 성사시킬 수 있다. 반면, 재화의 판매 없이 화폐를 획득하는 데 실패한 경제주체는 우선 화폐를 가진 경제주체의 선택을 받아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한 후에 화폐를 보유하게 되고 자신이 기획한 구매를 성사시킬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선, 가치론의 원칙으로서는 화폐를 분석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교환과정을 통해서 가치론의 원칙에 따라 교환가치가 결정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 거듭 나는 재화와는 달리, 화폐는 정의에 의해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가치론을 토대로 화폐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화폐의 이해에서 어려움에 봉착한다. 스미스가 시초가 된 통상적인 경제학의 화폐 분석 패러다임은 가치론의 원칙들을 적용해 화폐의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 패러다임은 스미스의 화폐분석을 역설로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화폐경제를 물물경제에 기반을 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가치이론의 틀 속으로 화폐를 통합하려는 노력은 스미스 이후 근대 주류경제학의 화폐연구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다. 화폐를 가치이론에 통합시키려는 문제를 일반균형이론의 전통에서 돈 파틴킨(Don Patinkin)은 화폐이론을 가치이론과 결합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포스트 리카르도 이론에서는 생산가격체계에 화폐 역할을 하는 상품을 발견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맑스 이론에서는, 한편에서는 상품 화폐의 가치를 상품의 순환과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정하는 문제로, 다른 편에서는 일반적 등가물을 이용해 가치를 표현하는 문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어떤 이론적 전통에서도 화폐를 가치론의 틀 속에 통합하는 패러다임은 만족할 만한 이론적 결과를 생산하지 못했다.

 

서두에 소개했던 버냉키가 언급한 통화정책의 중립성도 이 화폐분석의 패러다임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가치론의 틀에 화폐를 통합하려는 패러다임의 실패사례들을 감안할 때, 이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중립성의 개념으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초래한, 자산가격의 상승과 많은 노동자의 실업과 상공인의 대량 파산이 공존하는 현상을 경시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갈리아니의 체계 중에서 통치자의 재량에 의해 화폐가 발행되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통치자의 재량이 화폐의 발행과정에 개입하고 이에 따라 경제질서가 형성된다면, 경제질서와 사회통합이 개별 경제주체들의 자율적인 조정의 결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화폐발행에 대한 책임을 지는 통치자에게, 화폐발행이 공동체 유지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일부 구성원의 자산축적을 통해 공동체 붕괴에 기여하고 있는지 항상 반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18세기 화폐분석을 지배한 사고가 화폐를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대상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발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아리스토텔레스적 경향으로 인해, 가치론의 원리들에 의해 설명되는 가치를 가진 화폐는 순수한 경제재여야 했다. 하지만 18세기 중엽 화폐분석의 패러다임이 형성된 후 250여년 동안 이러한 패러다임을 토대로 진행되어 온 화폐의 분석이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결론 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적 삶을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 통화정책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은 아닐까?

by invisibleman 2020. 8. 21. 23:44


마지막 폐이지에 있는 저 4 문장을 만나려고 소설을 처음부터 읽어 내려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by invisibleman 2020. 7. 23. 17:01

경제민주화와 사회적경제의 관계를 민주주의의 세 가지 가치(자유, 평등, 연대)의 변증법적 운동의 개념을 사용해 설명하고자 한다. , 자유, 평등, 연대의 동학을 감안할 때, 1) 경제민주화와 사회적경제는 모두 평등에 대한 강조가 충분하지 않으며 2) 경제민주화는 사회적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대의 측면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평등-연대의 변증법은 경제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의 결합에서 민주주의 사회질서의 발전을 발견하는데, 이 결합은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책 프로그램에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평등, 연대 혹은 이에 대응하는 폴라니의 세 가지 경제원칙인 시장, 재분배, 호혜성 즉, 시장, 국가, 시민사회 간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작업을 의미한다는 것을 언급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치들의 변증법의 초기 형태는 프랑스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에서 발견할 수 있다. 토크빌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제도화되는 과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음을 민주주의 가치 중에서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여기서 변증법은 단순히 자유와 평등 사이의 대립이나 갈등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상태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유와 평등 간에는 협력도 존재한다는 의미다.

변증법의 첫 단계는 혁명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상황이다. 토크빌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정부에 참여할 것이다. 모두가 이웃들과 다르지 않고 아무도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완전히 평등하기 때문에 자유로울 것이고 또한 완전히 자유롭기 때문에 평등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평등이 만들어낸 정치적 평등 혹은 인민주권은 정치적 자유와 모순에 빠진다. 정치적 자유가 우세할 경우, 개인들은 각자 독립적인 지위를 주장하며 극단적인 경우 무정부주의적 상회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자유가 유지되지 못하면 평등이 전제주의와 결합하는 사회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가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상황이다. , 정치적 자유에 대한 교육이나 풍속이나 습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 혁명으로 갑자기 사회 및 경제적 조건의 평등이 실현되면 시민들은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자유를 실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물질적 쾌락의 욕구 충족을 통해 개인주의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개인주의로 인해 공적인 덕목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시민들 간의 연대가 희석되고 정치적 자유가 선거권의 행사로 축소되며 국가는 모든 권력을 집중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난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의 공포정치 혹은 나폴레옹 3세의 경험이 민주주의의 패러독스와 민주주의적 전제주의에 대한 토크빌의 인식에 배경이 됐다.

결국,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는 평등으로 인해 모든 개인들이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했으나 이것이 정치적 영역에서는 개인이 여론과 선거의 결과에 반영되는 다수의 의지에 복종해야 하는 사실로 인해 초래됐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정치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개인들이 자신의 의사가 다수의 의지에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토크빌은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을 완성시키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정치적 자유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다른 개인들과 연대를 통해 결사체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이 개인주의 고립에서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는 개인의 관심을 자기 자신에서 가족, 친지, 이웃 등 주변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도덕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민주주의에 내재해 있는 발전, 열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취향을 법관의 관점처럼 보수적인 것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민주주의의 문화를 획득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파악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된다. 토크빌은 공동체에서의 삶을 교육하는 도구를 정치·사회적 결사체, 마을공동체, 권력분산, 국민참여 배심원제도, 언론의 자유 등에서 발견했다.

 

상기한 바와 같이 1789년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과정을 토크빌은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으로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변증법에서 토크빌은 자유, 평등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이념을 구성하는 연대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크빌의 변증법에서 연대는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변증법에서 연대를 다루지 않았던 것은 연대의 내용이 실제로 채워진 것은 19세기 후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 정부를 구성했던 자코뱅당 같은 정치집단들도 연대에 기반을 둔 비영리법인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정부는 인민주권의 원칙과 모든 인민들의 자유롭게 가입하고 참여할 권리에 위배될 수 있는,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동업자 조합, 여성 단체, 생산자 단체 등을 폐지하는 법령을 공포했다(1791le décret d'Allarde; la loi Le Chapelier). 그러나 18307월 혁명과 18482월 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한 노동자 혹은 생산자의 결사체가 다시 중요한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1901년 비영리법인 계약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작업장에서 해고, 산업재해, 질병, 노령 등의 위험에 처한 노동자에게 주권을 가진 시민에 걸맞는 사회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조직으로서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소개한 토크빌의 자유-평등의 변증법을 발전시켜, 경제민주화를 평가하고 사회적경제의 의의를 발견할 도구로서, 민주주의적 사회질서를 구성하는 3대 가치인 자유, 평등, 연대 혹은 이에 대응하는 폴라니의 세 가지 경제원칙인 시장, 재분배, 호혜성 즉, 시장, 국가, 시민사회의 변증법적 운동과 그 과정에서 구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질서 유형을 서술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변증법에서, 자유는 자유로운 개인의 경제적 이니셔티브와 그에 기반한 개인 간에 이뤄지는 수평적인 교환관계를 의미하고 폴라니의 세 가지 경제원칙 중에서 시장에 대응한다. 평등은 시장의 결과로 발생하는 개인 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 분배와 재분배 과정에 개입하는 국가에 대응한다. 그리고 호혜성은 시장과 동일하게 개인 간 수평적 관계에 근거하지만, 그러나 시장과는 구별되는 비상품적이고 비화폐적 교환관계 등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시민사회 혹은 제3부문 등 연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공동체를 통해 제도화된다.

자유, 평등, 연대 등 민주주의의 세 가치가 변증법적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이들이 각자 자신 내부에 다른 두 가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모순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하나의 가치의 내부에 다른 두 가치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부연하면, 사회질서 속에서 자유는 동등하고 특정 가치에 연대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개인 간 평등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공동의 운명을 가졌다는 감정에서 유래한다. 연대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그들 간에 존재하는 배제 혹은 소외와 맞서 싸우는 도구여야 한다. 세 가치가 각각 다른 두 가치와 모순 관계에 있다는 점을 부연하면,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경제주체의 과도한 경제적 자유 추구는 평등을 부정하고 연대를 개인 간의 행동으로 축소한다. 과거, 동유럽의 사회주의 질서에서처럼 국가에 의한 평등의 과도한 추구는 자유를 부정하고 연대를 통한 정치참여를 저해한다. 마을이나 가족 등 전통적 공동체에서처럼 연대의 강요는 자유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용인하고 영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로 인해, 자유, 평등, 연대 등 세 가치가 서로 간에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민주적 질서를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세 가치 중에서 하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질서를 살펴보자. 신자유주의 질서처럼 자유만이 강조되는 사회는 금융위기와 Covid-19가 초래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오고 있다. 평등만이 강조된 사회주의 체제는 북한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미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있다. 연대만이 강조되던 전통사회도 근대에서는 지속되지 못하고 소멸되고 있다.

세 가치 중에서 두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질서를 살펴보자. 먼저, 자유와 연대가 강조되고 평등이 결여된 사회질서는 다원적 민주주의사회의 형태를 가진다. , 불평등을 생산하는 시장으로 제도화된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사회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간여를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평등과 연결된 공정이나 사회정의는 일부 시민단체 등 제3부문으로 활동과 연계되어 버리고 연대는 지역, 민족, 성별, 성적 취향, 혈연 등에 따라 세분된 하위그룹의 경계 내로 축소돼 존재하게 된다.

평등과 연대가 강조되고 자유가 소홀히 다뤄지는 참여민주주의사회질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사회민주주의 질서에서는 구성원 간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동과 노동조합의 활성화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가 노동유연화 같은 사회 덤핑이나 기업 조세부담 완화 같은 조세 덤핑 등의 경쟁에 참여함에 따라, 스칸디나비아 3국의 사회질서에서 참여민주주의적 특징을 희석시켰다.

자유와 평등의 강조와 연대의 경시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질서는 포용적 민주주의로 분류되는데, 서유럽에서 1970년대까지 지속된 복지국가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국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동등한 사회권을 누릴 수 있도록 배제 혹은 소외를 방지하는 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서, 사회 프로그램은 수혜대상을 축소하거나 내용을 감소시켜 운영하도록 강요를 받았고 이를 통해 복지국가 모델은 존재 자체가 위태로웠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위기는 이 모델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많은 비용과 획일성에 근거를 둔, 신자유주의의 의료민영화 주장 혹은 공교육 포기 주장에 맞서 공공의료와 공교육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의료, 교육 등에 대한 모든 시민의 소외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고 이를 자원봉사자, 민간의 자조적인 조직, 사회적경제 조직 등을 이용하는 연대의 방법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자유-평등-연대의 변증법적 동학이 만들어낸 사회질서의 유형에 의하면, 2016년 박원순시장의 서울시 민주화정책이나 문재인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자유와 평등의 두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연대의 결여가 두드러지는 사회질서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경제민주화 정책이든 포용적 혁신성장 정책이든 정부가 기획하고 주도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시민사회와 제휴를 통해 공동으로 실행하는 과제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혁신성장 정책에서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결여된 이유는 두 정책 모두 기회의 균둥을 언급할 뿐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시민들의 경제 및 사회적 조건을 평등화하는 것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 경제 및 사회적 조건의 불평등으로 인해 평등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연대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없고 또 발전의 기반을 상실한 시민사회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파트너가 될 만큼의 역량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평등을 강조하지 않는 경제민주화 정책은 성공하더라고, 시민사회가 부재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주도권을 유지하게 되어, 국가가 시민들에게 보장하려는 삶의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유, 평등, 연대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우리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 정책에 사회적경제 요소를 부가함으로써, 앞에서 분류한 모델에 의하면, 복지국가 모델에 포용적 민주주의 모델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 평등, 연대는 각자 다른 두 가치와 변증법적 관계를 맺고 있기에, 연대의 보완은 그 자체로 자유와 평등의 두 가치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연대 또한 자유와 평등의 두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자유, 평등, 연대 혹은 시장, 국가, 시민사회 간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제도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정의와 공정이 준수되는 경제를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연대의 도움이 없이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경제적 주체의 배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또한, 연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시장의 질주를 억제하고 주체들의 경제 및 사회적 조건의 평등화를 일정 정도 이뤄야 한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주체들의 배제와 빈부격차의 심화는 가난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주체에게 무력감과 함께 존엄성 상실을 초래한다. 이런 경우, 해당 개인이 다른 모든 주체들과 자신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하는 온전한 권리를 행사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주의의 절차에 따라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평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연대가 작동할 수 없고, 연대의 도움이 없으면, 평등이 자유의 과잉이 초래하는 위협을 받게 된다.

경제민주화가 주요한 아젠더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자유와 평등의 모순이 심화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경제민주화 정책과 연대의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 정책은 시장에서 배제된 개인을 비상품적 혹은 비화폐적 성격을 가지는 사회적 가치 창조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소비, 저축 등 경제적 순환활동에 복귀시키고 자유로우며 상대적으로 동등한 시민의 지위도 회복시킬 것이다.

 

 

 

by invisibleman 2020. 7. 3. 11:44

 

 

잠재성장률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한 국가에 존재하는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은행의 자료를 참조하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추이와 전망은 다음 그림과 같다.

 

잠재성장률과 요인별 기여도 추이 및 전망

 


잠재성장률이 1991년∼1995년에는 7.3% 수준에서 2016년∼2020년에는 2.7% 수준으로 크게 하락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데 기여한 것은 상기 기간동안 각각 4.0%2.4%에서 1.4%0.9%로 크게 감소한 자본투입 기여율과 총요소생산성 기여율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투입 기여율 하락에 대한 설명은 과거 고성장 시대에 비해 우리 경제의 성숙도가 진전하면서 물적 자본의 규모가 커져 증가 속도가 저하됐다는 것이다. 총요소생산성 기여율 하락에 대한 설명은 기업활동과 투자에 대한 규제로 인해 혁신성장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환경개선, 규제개혁 등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제시된다.

 

자본투입 기여율 계산과정에서 자본투입량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인 총고정자본형성을 부분별로 나누어 동 기간 중 평균 연증가율과 잠재성장률과의 상관계수를 구해보면, 주거용건물 투자와 잠재성장률은 (-)의 상관관계를 가짐을 확인할 수 있다. ,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투기로 인해, 지식재산생산물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사용돼야 할 재원이 주거용건물 건축에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대응방안은 주거용건물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는 것이다. 정책금리가 0.75%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다. 이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해야 하는 금융비용도 역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비용이 낮아도, 우리 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 생명공학이나 재생에너지 등과 관련된 연구개발과 투자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이들 분야에 대한 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주거용건물에 대한 투자가 가져다 주는 수익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거용 건물에 대한 투자는 설비투자나 지식재산생산물 투자처럼 소득의 흐름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주거용 건물에 대한 투자는 투기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 주거용 부동산투자가 수익을 실현하는 길은 해당 부동산 구입자가 해당 부동산 판매자보다 더 큰 액수의 부채를 금융기관에 지고 구입하는 경우로 제한된다. 다시 말해, 주거용 건물에 대한 투자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가계부문의 부채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의 충족은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 게다가 잠재성장률 하락까지 고려하면, 주거용건물에 대한 투자는 거시경제의 불안정성 요인일 뿐만 아니라 절은 세대들이 혜택을 향유할 투자기회와 일자리기회를 비용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거용 건물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는 방안으로서, 해당 투자에 대한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에게 해당 규모의 5배에서 10배 정도의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해 본다. 금융기관의 대출은 우리 경제에서 화폐를 공급하는 주요 기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covid-19 등의 사례를 통해 보았듯이,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제기되자마자 중앙은행은 금융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화폐가치와 금융시스템의 안정화 목적은 국민들의 경제생활 안정화지 주거용 건물과 같은 자산가치의 안정화가 아니다. 이에 대한 교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조치를 통해 충분히 알려져 있다. covid-19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 혹은 제로금리 등 통상적이지 않은 화폐정책을 취할 경우, 경제의 지속가능성 측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고려에서 나온 것이 주거용 건물 투자에 공급된 금융기관의 대출에 대해 징벌적 충당금을 쌓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도한 부채가 가져온 위기에서 시장의 제재는 구조조정을 통한 노동자의 대량해고가 아니라 부채를 이용해, 거시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자산인 주거용 건물에 투자한 경제주체들에게 내려져야 한다는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by invisibleman 2020. 5. 8. 17:02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세계적 확산이 초래하고 있는 현재 경제상황에서 양적완화가 실시되는 양상을 보면, 미국의 중앙은행은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위기의 조짐이 나타나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금융기관의 안녕을 위해, 주식시장이 새로운 고점을 찍을 때까지, 통화를 찍어내지 않으면 안정을 찾지 못하니 말이다.

중앙은행의 강박증은 양적 완화를 동원해 경제위기를 봉쇄함으로써 시장의 제재가 실행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부동산투자, 그리고 2020년에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재정비되지 못하고 자본시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된 채로 남아있던 글로벌 공급사슬 구축에 투입된 자본에 대해 제재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2008년 경험을 근거로 추정하면, 중앙은행의 노력은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중앙은행이 강박증으로 봉쇄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는 경제위기가 아니라 경제위기가 내포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출현이지 않을까? 192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은 뉴딜정책을 통해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던 사회계약을 도입했다. 이 새로운 사회계약에 따라, 시장의 제재를 허용하는 긴급은행법을 제정해 부실 은행을 정리하고 노동자에게는 노동3권 보장과 실업급여나 노령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주어졌다. 양적 완화를 동원해 경제위기를 잠정적으로 봉쇄하면서 중앙은행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도입될 수 있는 계기를 막고 있을 수도 있다. 빈부격차, 인종갈등으로 지속가능성이 도전받는 미국 사회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회계약과 함께, 뉴딜정책이 열었던 30년 동안 지속됐던 미국경제의 황금기가 다시 도래하는 것을 막고 있을 수도 있다.

미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도전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미국 제도 정치권을 구성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무력한 양상을 고려하면, 새로운 사회계약의 형성을 위해서도 양적 완화와 같은 중앙은행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와 함께, 양적 완화로 만들어진 화폐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 경제주체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부채 중에서 중앙은행이 자산으로 인수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새롭게 생산된 화폐가 전자에게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토지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변화의 원인되는 석탄산업, 원유산업 등의 부채는 인수대상에서 제외하고 서민들의 학자금부채나 재생에너지산업의 부채 등은 적극적으로 인수해 자금의 흐름이 집중되도록 하는 방안을 중앙은행이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지 않았나?

by invisibleman 2020. 4. 10. 16:59

2008년 금융위기의 국면에서 미국, 일본, 유로존 등의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 혹은 마이너스 영역으로 정책금리를 인하해도 위기의 확산을 막지 못하자 양적 완화라는 예외적 조치를 채택했다. 금융위기 이후 12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양적 완화로 증가한 통화량을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환원하지 못했고 정책금리 수준 또한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올해 벽두부터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경제가 다시 위기상황에 처하자, 금리인하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다시 한번 더 양적 완화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국가, 은행, 공공기관 혹 일반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나 은행의 대출자산을 매입하고 대신 화폐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인수해 신용을 공급했으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채무불이행 리스크 증가로 시중은행의 신용공급 능력에 장애로 작동하게 된 상기한 개별 경제주체가 발행한 채권을 은행의 신용공급능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이용해 재인수하고 대가로, 우리 사회의 보편적 구매력을 표시하는 화폐를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것이다. 결국, 양적 완화는 채무불이행 리스크가 급증하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개별 경제주체의 부채를 중앙은행을 내세워 사회가 인수하는 것으로, 경제위기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시중은행의 신용공급능력 위축을 최소화하며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 양적 완화를 도입한지 10년이 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다시 양적 완화를 확대 적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지금 양적 완화를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2008년의 경험을 고려하면, 양적위기는 일시적으로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금융시장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위기의 원인을 해소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양적 완화를 도입했으나 그 이후 양적 완화로 증가한 통화량을 정상화할 수 없었다. , 중앙은행의 예외적인 지원 하에서도, 자본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던 부채의 과도한 규모를,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지 않는 수준까지 축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를 기반으로, 공공부문, 기업, 개인 등 개별 경제주체가 시장을 통해서 조달하는 자금의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부채의 무분별한 증가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모델이 금융위기 이후에도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를 도움으로,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효율성에 이어, 양적 완화에 대해 윤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은행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확대한 신용을,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화폐로 대체하는 양적 완화는, 개별 경제주체의 부채를 사회화한다. 이는 양적 완화가 시중은행들의 대출조건 역시 사회화해서 획일화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따라서, 양적 완화는 새로운 기술력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자보다는 기존의 통상적 대출조건을 충족하는 생산자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안전성을 일반적으로 인정받은 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경제주체들에게 우선적으로 자금을 배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시중은행의 신용공급 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를 통한 신용공급의 사회화는 혁신적 생산자와 그가 가져올 신규 투자와 고용의 기회를 제한하게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양적 완화는 경제위기의 해결방안으로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경제를 지속시켜, 보다 더 나은 경제로의 발전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by invisibleman 2020. 3. 27. 22:54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발병이 전세계적 전염병이 되면서 전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공급체인의 원활한 작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자동차 같은 산업의 생산차질이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우선시되면서 서비스업, 관광업, 항공운수업 등의 매출은 크게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전세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신속하게 반영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주식시장에서 최근 큰 폭의 하락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등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 영국의 중앙은행 등 전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신속하게 정책금리를 0% 수준으로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미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던 정책금리 수준을 감안할 때, 금리 인하 자체의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금리 인하에 부수되는 양적 완화 조치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추정된다.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국가, 금융기관, 법인 등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시중은행들로부터 이들 채권을 구매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시중은행은 채권의 부실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자금을 공급할 여력을 획득하게 된다.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식시장은 급락하는 장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의 이러한 모습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상화되어 버린 저금리정책과 양적완화로 구성된 중앙은행의 개입의 실효성뿐만 아니라 정당성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전격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급락추세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문제가 글로벌 공급체인의 작동 중단이나 상당수 산업의 생산 축소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200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됐으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는 각종 자산의 가격 수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로 급락하기 직전까지만 하여도,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유동성 하에서 주식시장은 금융위기 이전의 가격수준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으로 최고수준을 연일 갱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격수준에 대한 의심이 확산됐다. 오늘 100 달러를 주고 산 주식을 내일 100 달러 혹은 그 이상을 받고 현금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와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들이 재화, 서비스 자본의 세계화에는 적극적이었으나 노동의 세계화에는 부정적이었던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상품의 세계화의 숨겨진 면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세계 감염으로 구체화되자 국가들이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켜 국경을 앞다투어 폐쇄하는 것으로 폭발했다. 이러한 사건은 글로벌 공급체인을 기반으로 했던 주식의 가격 수준 전반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채권,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의 가격수준에 대한 회의가 일반화되고 있다. 어제까지 가지의 저장 수단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던 것들의 당연한 지위가 의심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산가격의 현상유지에 유용한 중앙은행 개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중앙은행 개입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는 정당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지 자산가격의 유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의 급등에 따른 빈부격차 심화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에도 채택됐고 코로바바이러스의 전세계 확산의 위험이 가시화된 현재의 상태에서도 우선 동원된 대응방법은 정책금리인하와 양적 완화 등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통한 통화량 증가다. 이 방식은 자산 가격의 적적성에 대한 회의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손실을 사회 전체로 전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 전반적인 자산 가격 수준의 적정성에 대한 회의를, 통화량 증가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환율 상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플레이션 위협이라는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일시적으로 유예시키는 것을 위기 대응책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위협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증가한 통화량은 금융위기 발발의 계기가 됐던 자산가격을 다시 상승시켰을 뿐,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일용직 같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만 회복시켰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미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베이붐 세대의 제거자(bommer remover)라는 별명이 주어졌다. 이 별명이 상기시키는 자산을 축적한 세대와 이제 막 경제활동을 시작해 안정적인 고용과 혁신적인 구상을 상품화하는 것을 허용할 투자의 기회 확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느 세대 간의 대립을 감안하다면, 자산가격의 붕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사회화하는 중앙은행의 무조건적 개입은 대응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대응방안은, 혁신의 개념을 이론적 처음 제시했던 슘페터가 1911년 그의 저서 경제발전이론에서 혁신을 기존의 현금흐름을 파괴하고 새로운 현금흐름을 만드는 기업가 활동으로 정의하고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자산가격의 안정이 아니라 기업가 활동을 통해 제고된다는 점을 고려해, 화폐발행 과정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대응방안은 금융위기를 마치 멜라네시아에 속하는 솔로몬 제도의 원주민인 Are ‘Are족이 축제를 통해 그들의 통치자인 빅맨(Big man)의 경제적 부를 소진시키고 그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솔로몬 제도를 포함하는 멜라네시아 지역에서 빅맨이라 불리는 통치자는 조상의 지위 같은 유전적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성취를 기반으로 상호호혜 메커니즘을 이용해 다른 공동체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형성된다. 하지만, 통치자 개인의 영향력 증가와 그에 따른 경제력 집중은 피통치자의 질투와 불안을 자극해 통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물리적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축제를 개최하는데, 이 축제는 통치자에 대한 반발을 상징적으로 무마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통치자의 재산을 탕진해, 기존의 빅맨의 쇠락을 초래하고 새로운 빅맨의 성장을 고무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빅맨의 세대교체를 이끌어내는 축제와 같이 경제위기 작동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위기대응 정책이 경제위기의 사회화로 귀결되는 개입이 아니라 혁신을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by invisibleman 2020. 3. 17. 22:41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일로이(Eloi)와 몰록(Morlock)으로 분화하고 있는 인류를 봤다. 일로이와 몰록은 영국의 작가 웰스(H. G. Wells)가 1895년에 쓴 작품인 타임머신에서 등장하는, 지금부터 대략 80만년 후 현재 인류에서 진화한,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종류의 존재다. 일로이는 낙원처럼 변한 지표면에서 하는 일 없이 과일만 먹고 사는 종이다. 반면, 몰록은 지하에서 각종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노동을 통해, 지표면의 낙원을 떠받치는 존재다. 그런데, 몰록은 주식으로 일로이를 먹는 식인종이다. 기생충은, 19세기 극심한 계급대립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윈의 진화론 개념인 자연선택이 적용하게 방치하면, 인류는 다른 종을 착취하는 무기력한 존재와 착취의 대상이지만 착취자를 잡아먹는 존재 등 서로 다른 두 아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웰스의 관점을 대략 120년 후 영국이 아닌 한반도 서울에서 체험하도록 하는 영화였다.
웰스는 자연선택에 따른 인류의 엘로이와 몰록으로의 진화를 정해진 것으로 보지 않았다. 과학과 사회주의를 이용해, 19세기말 사회와 경제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1895년 이후 인류역사를 아는 시간 여행자는 봉준호의 기생충에서 묘사한 지상층과 지하층 인류의 분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볼 것 같다. 

by invisibleman 2020. 2. 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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