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사람중심 경제의 근간인 소득 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가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임금주도성장론에서 유래했다. 임금주도성장론은 노동자간 임금 격차 축소, 실업급여 확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국민소득에서 임금비중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설정된 정부의 복지정책, 조세정책, 사회정책,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장기적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임금주도 성장론이 제기된 이유는, 2007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났듯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 최저임금 인하, 단체교섭제도, 노동조합, 고용보호제도를 약화시키는 조치 등의 경제정책과 이를 통해 형성된 경제체제가 소득불균등, 특히 임금 소득 격차 심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제고해 경제적 약자가 겪는 고통을 배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에 의하면, 임금주도성장론이 실질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친노동적인 분배정책이 임금주도 경제체제와 결합되어야 한다. 노동에 우호적인 분배정책에서 총수요의 증가나, 총수요 증가율 혹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상승이 유래한다면, 해당 경제체제는 임금주도 경제체제라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임금주도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친노동적인 분배정책 외에도 임금주도 경제체제 형성을 위한, 법제도와 경제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이처럼 임금주도성장론이 단순히 노동에 우호적인 분배정책만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분배 증가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있는 경제체제의 전환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 분석을 위해 사용한 개념인 문제설정 적용할 있다. 문제설정은 대상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존재 이유되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시대의 문제와의 관계까지 체계적인 구조로 분석한다.

글은 문제설정으로서 임금주도성장론과 유사성을 갖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에 대립했던 중농주의 문제설정을 분석하고 오늘날 임금주도성장론에 대해 가질 있는 함의를 찾고자 한다. 글의 구성은 우선, 문제설정으로서 중상주의와 중농주의를 분석해 문제설정의 대립관계를 분명하게 다음, 중농주의의 등장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미셀 푸코의 통치기술변화로 설명할 것이다. 시사점으로는 중상중의에서 중농주의로의 전환이 단순한 정책변경이 아니라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체제 개혁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임금주도성장론 도입의 어려움을 에둘러 언급할 것이다.

시작은 문제설정으로서 중상주의를 분석하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를 교역에서 가치측정의 수단이고 교환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금과 은의 축적된 양으로 측정했다. 그런데, 중상주의는 교환을 제로썸게임으로 인식했다. 교환에서 참가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손해를 겪지 않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상주의에 기반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 수단은 국내 교역이 아니라 외국과의 교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상주의 정책은 대외무역 흑자를 추구했다. 무역 수지 흑자의 형태로 축적되는 금과 은으로 측정되는 국가의 부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해외에서 수입된 원재료를 가공해 수출할 있는 상공업자가 필요했다. 국가의 증대에 필요한 무역수지 흑자를 실현할 상공업자를 육성하기 위해, 중상주의 정책(루이 14 하에서 재상이었던 콜베르가 실시한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출품 생산과 교역에 있어 국내의 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있도록 독점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독점권의 보호 하에서 생산된 수출품이 대외교역에서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있도록 임금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함으로써 노동력을 재생산할 있는 최저수준인 생존임금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생존임금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곡물의 유통과 가격이 제한되었다.

중상주의 체제가 형성된 18세기 영국과 프랑스는 모직물 공업의 발전과 이로부터 얻을 있는 고급 모직물의 수출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를 추구했다. 하지만, 모직물공업과 산업과 수직적 연관관계에 있는 농업 그리고 목양산업이 맺는 관계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영국에서는, 농지가 목양에 필요한 사료를 생산할 있도록 전환되었다. 그래서 농업이 생산한 곡물을 목양에 필요한 사료로 이용하면서 모직물 공업에 필요한 양모를 국내에서 생산할 있었다. , 영국에서는 모직물 공업을 정점으로 하고 농업과 목축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적 산업연관체계가 형성됐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모직물 공업은 수입 양모에 의존해야 했다. 농업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곡물을 생산했을 , 목양산업에 필요한 사료생산으로 전환할 없었다. 삼포식 혹은 이포식(assolement trienal ou bienal)으로 이뤄지는 농업생산은 겨울 , 보리, 귀리 곡물 위주로 이뤄졌고, 휴경지를 이용하는 공동 방목장은 곡물생산에 필요한 쟁기를 소나 등의 사육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영국에서처럼 공동 방목장을 이용해, 모직물 제조업의 원료인 양모를 공급할 목적으로 목양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프랑스의 모직물 공업은 원료인 양모를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없었고 수입 양모를 가공해 생산한 모직물의 수출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직물 제조업의 생산비용 절감이 영국에 비해 절실하게 필요했다.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이 생존수준에서 유지돼어야 했고, 이를 위해 루이 14세의 프랑스 정부는 식량난 문제를 국가가 비축한 곡물로 해결하던 근대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제도의 작동을 위해, 국내에서 생산된 곡물의 대외수출을 금지하고 국내 곡물가격을 생존임금에 상응하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중농주의의 문제설정은 위에서 설명한 중상주의의 문제설정과 대립한다. 먼저, 국가의 부는 이상 금이나 은의 보유량이 아니라 국민이 생존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필요하거나 편의를 제공하는 재화로 정의되었다. 중농주의에 의하면, 부의 생산은 토지에 노동을 투하함으로써 이뤄진다. 부의 정의와 생산방법으로부터, 토지와 인구 사이에, 중농주의가 전제하는 상관관계를 발견할 있다. , 중농주의는 토지에서 많은 농작물이 생산될수록 인구는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할수록 많은 토지가 경작되는데, 이것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농업은 국가의 부를 증가하는 있어,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의 산업적 중요성은 중농주의 경제이론에서 농업만이 잉여가치인 순소득을 생산할 있다고 하는 농업의 배타적 생산성 가설로 나타난다. 농업의 배타적 생산성 가설에 의하면, 공업과 상업이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에 해당하는 가치만을 생산하는 반면, 농업은 중농주의 이론에서 순소득(produit net)이라고 명명됐던, 생산 비용을 초과하는 잉여 생산물의 가치 생산할 있는 유일한 산업이다. 농업이 생산한 순소득으로 인해, 지주계급이 존속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업과 상업도 지속적으로 활동할 있다. 농업이 생산한 순소득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경제 구조가 바로 중농학파가 발견한 경제의 자연질서다.

이러한 농업에 대한 전제로부터, 중상주의의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에 반대해, 중농주의는 곡물의 대내외 교역 자유화를 내세웠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중상주의는 곡물의 국제교역을 금지해, 국제교역에서 결정되는 곡물가격에 비해 국내에서 유통되는 곡물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공산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무역수지 흑자구조 형성을 지향했는데, 이러한 중상주의 정책은 농업생산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소득의 일부를 박탈해, 모직물처럼 국가가 장려한 수출품 제조업자들에게 배분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곡물의 교역 자유화는,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농산물 가격과 공산품 가격 간의 자연적인 관계를 중상주의 정책으로 단절된 국내 시장에서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생산비용을 반영하는 자연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곡물의 가격은,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상품 간의 가격체계와 경제적 계급 간의 소득체계로 표현되는 사회의 자연적 질서를 고려하는 중농주의의 문제의식에서 중심점이다중농주의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자연적 질서는 종류의 관계로 구성돼 있다. 번째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형성되는 물리적 관계이다. 곡물이나 공산품의 가격으로 표현되는 관계에서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적 기능을 발견한다. 번째 관계는 인간들 사이에서 혹은 경제적 계급 사이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다. 지대, 조세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물리적 관계에서 생산된 부가 계급들 사이에서 순환하게 된다. 중농주의가 경제적 질서 내에서 물리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구분하는 것은 경제를 생산과 순환이라는, 서로 다른 단계의 연속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갖춘 토지에 생산도구가 동원된 결과, 농업은 일정 양의 곡물 형태의 부를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된 부는 수직적 혹은 수평적 교환을 통해 경제 내에서 순환된다. 보다 상세하게 언급하면, 지대, 조세 그리고 산업의 생산물과의 교환을 통해서, 농업에서 생산된 부는 지주와 군주 그리고 산업으로 이동하게 된다. 중농주의는 화폐경제의 정착을 전제하고 있어, 수평적 교환 , 시장에서의 곡물 판매를 통해, 농업부문의 생산자는 그에게 토지를 임대한 지주에게 지급할 지대에 상응하는 금액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이번 생산을 위해 고용한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한 금액과 생산에 필요한 기자재의 구입과 이용에 지출한 금액을 다시 충전해, 차기 생산에 필요한 자본으로 보유하게 된다.

먼저, 곡물과 여타 생산물의 가격이 중농주의 체계에서 결정되는 과정을 스라파의 생산가격 시스템을 전용해 살펴보자. 그리고 나서 경제표를 통해 계급 간에 발생하는 소득흐름을 살펴볼 것이다.

경제를 구성하는 곡물과 여타재화 재화를 생산하는 기술적 조건은, 재화 j 단위를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재화 i 양을나타내는


성분으로 하는 행렬로 표시될 있다. 케네의 모델은 농업과 여타 산업의 산업으로 구성돼 있으니, 1 농업 2 여타 산업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행렬을 이용해 생산과정을 표현할 있다.


수식을 단순히 하기 위해, 고정자본이나 토지에 투하되는 자본은 배제하고 매년 새로 투입되어야 하는 유동자본만을 고려했다.

잉여생산물의 벡터(s) 다음과 같이 정의 된다.


가정에 의해,


이라고 하자. 순소득(y) 잉여생산물을 가격으로 평가한 금액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표현할 있다.


순소득의 크기를 알기 위해서는 재화의 가격


구해야 한다.

재화의 가격은 다음과 같은 생산가격 시스템으로 표현할 있다.


상기 생산가격 시스템에서 

  순소득(y) 농업부문에 배분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의 도입으로 생산가격 시스템에서 순소득의 크기를 알기 위해서는 가격의 크기를 알아야 하고 가격의 크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순소득을 농업부문과 여타 산업부문으로 배분하는 비율을 알아야 한다. , 파이를 배분하는 방법이 파이의 크기를 결정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농주의 체계에서 파이를 배분하는 방법이 바로 농업부문의 배타적인 생산성 가설이다. , 농업부문만이 순소득을 생산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에 근거하여 생산적 계급과 무익한 계급도 정의했다. 가설에 의하면 


표현할 있다.

이를 반영하면, 위의 생산가격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상기 생산가격 시스템의 번째 식을 이용하면, 재화의 상대가격은 다음처럼 표현할 있다.


식은 농업의 배타적 생산성을 전제하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있다. , 전제는 여타 산업을 무익한 것으로 규정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농산물과 여타 산업의 생산물 간의 상대가격을 구하기 위해 필요했다. 상기 상대가격, 농업의 배타적 생산성 가정 그리고 여타 산업의 무익함 가정이 모두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농주의 경제이론에서 경제계급 수직적 혹은 수평적 순환을 분석해 보자. 순환은 중농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케네가 ‘경제표’를 도입해 분석했다. 경제표는 개인 사이의 경제적 관계 대신 계급 경제적 관계를 고려했다. 경제표는 계급으로 구성된 농업국가를 상정한다. 계급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생산적인 계급; 토지를 소유한 대가로 농업에서 생산한 순소득을 수취하는 지주계급 그리고 농업 생산활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순소득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무익한계급이다. 생산적인 계급과 무익한 계급은 종사하는 활동이 농업이냐 여타 산업이냐에 따라 구분된다. 반면, 지주계급은 종사하는 생산활동에 의해 정의되지 못하고 농업이 생산한 순소득을 수취하여 소비한다는 사실에 의해 정의됐다.



 

경제표에 묘사된 생산부문의 생산계급과 최종 소비를 담당하는 지주계급 경제적 계급 간의 관계는 화폐의 흐름으로 표현됐다. 계급간의 경제관계는 생산물의 매매, 지대의 납부와 수취 등으로 표현되는데, 생산기간 출발점에서 계급이 보유하고 있던 화폐잔고는 지주와 무익한 계급의 지출로부터 시작하여 수취, 지출, 지급 일련의 과정을 거쳐 기간 말에 다시 출발점과 동일한 계급별 화폐잔고를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순환의 형식을 가진다. 상술하면, 생산기간 초에 지주계급은 지난 생산기간에 지대 명목으로 수취한 소득 20억원을 농산물과 여타 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생산부문에 각각 10억원씩을 지출한다. 무익한 계급 역시 지난 생산기간에 비축한 10억원을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농업부문으로부터 구매하기 위해 지출한다. 그리고, 무익한 계급은 지주계급에게 생산물을 판매하고 받은 대금 10억원도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농업부문에 지출한다. 지주계급과 무익한 계급으로부터 농산물 판매대금 명목으로 30억원을 수취한 생산적 계급은 이중 10억원은 농업 생산에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여타 생산부문에 지출한다. 무익한 계급은 이를 비축하여, 다음 생산기간 초에 농업부문으로부터 원재료를 구매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생산적 계급은 남은 20억원을 지주계급에게 지대 명목으로 지급한다. 지주계급은 다음 생산기간 초에 농산물과 여타 생산물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소득을 보유하게 됐다.

지금까지 화폐의 순환으로 해석한 경제표 도식을 생산물의 흐름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해 보자. 농업부문은 자신이 지난 시기에 생산하여 보유하고 있던 생산물 2단위를 유동자본으로 투자하여 5단위의 농산물을 생산한다. 이중 지주계급에 1단위를 판매하고 무익한 계급에 2단위를 판매한다. 생산적 계급은 여타 생산부문의 생산물을 1단위 구입한다. 무익한 계급은 자신들의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그리고 생산기간 동안 소요될 식량으로 각각 1단위 모두 2단위의 농산물을 구매한다. 지주계급은 농업부문과 여타 생산부문으로부터 각각 1단위씩의 생산물을 구입한다.



농업의 배타적 생산성 가설에 기초해 있는 중농주의는 가지 정책으로 요약될 있는 정치개혁을 제안했다. 번째는 농업생산과 곡물의 자유로운 유통에 부담을 주는 모든 세금을 철폐하고 이를 대신하여 지대를 수취하는 지주계급만이 부담하는 유일한 세금을 신설하는 것이다. 주장에는, 농업에서 생산된 순소득을 지대 형태로 지주가 전유한다는 중농주의의 다른 기본적인 가정이 전제돼 있다. 번째 정책 제안은 수출을 포함하는 곡물의 유통과정에 존재하는 정부의 제약과 정부의 특혜로 형성된 독과점과 폐해를 제거하여, 유통단계에서 부당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곡물 생산자에게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상주의 문제설정에서 중농주의 문제설정으로의 전환은, 미셀 푸코에 의하면, 통치기술의 변동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푸코의 통치기술 분석은 -규율-안전장치로 이어지는 연대기를 내포하고 있다. , 중세에서 18세기 이전까지 법을 중심에 두고 규율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던 통치기술이 18세기 이후 중농주의와 함께 경제학이 출현하면서 안전장치 위주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살인을 하면 된다, 절도하면 된다 같은 금기처럼, 법은 행할 있는 것과 행해서는 되는 것으로 나누고, 행해서는 되는 것을 행했을 경우 그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행해서는 되는 것을 행하는 경우에 받을 있는 처벌을 상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법이 작동하기에 푸코는 법이 상상적인 안에서 작동한다고 한다고 언급한다. 반면, 규율은,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법에 현실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 인간이 본성적으로 악의적이며, 나쁜 생각이나 나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이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명령과 의무 그리고 감시와 교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이 규율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중상주의 하에서 임금을 생존임금 수준에서 상승하지 않도록 제한할 있었던 이면에는 식량난을 막기 위해 작동하고 있던, 법과 규율로 구성된 통치기술이 있었다. 곡물의 비축을 금지해서 모든 곡물은 수확과 동시에 시장에서 매각되어야 했고 곡물의 수출이 금지되어 생산된 곡물은 국내에서만 유통되었다. 무문별하게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곡물의 경작면적도 제한되었다. 이러한 제한조치를 통해 곡물의 가격이 조절됐다.

중농주의가 중상주의 문제설정을 대체할 있는 것으로 부각됐다는 것은 중농주의의 곡물 유통자유화에 부합하는 통치기술이 실현될 있는 여건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통치기술은 법과 규율이 아니라 안전장치. 안전장치는 지배’ (domination, tyranny)와는 구별되는 통치’ (government), 그리고 담화, 텍스트, 제도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으로 구성된 사회적 장치’(social devices) 등을 동원하는 통치기술이다.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법과 이를 보완하는 규율과는 달리, 푸코에 의하면, 안전장치는 현실에서 작동한다. 식량난과 관련하여, 중농주의가 내포한 안전장치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의 자연적인 활동에 기반을 , 곡물의 국내외 유통의 자유화다.

중농주의에 의하면, 곡물의 자유로운 유통은 모든 개인이 곡물을 원하는 만큼, 그리고 원하는 기간 동안 저장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생산량이 풍족하면, 개인들은 곡물을 시장에 내다 팔기보다는 가격이 상승하길 기다리면서 축적할 있다. 결과, 풍년에도 곡물가격이 폭락하지 않고 일정수준에서 유지되어 곡물생산에서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흉년으로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우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곡물이 시장에 출하될 있어, 풍년이 해에 곡물을 비축했던 개인들은, 수입 곡물이 시장에 공급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오른 가격에 서둘러 비축했던 곡물을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에 가격상승이 심각하지 않을 있다. 이처럼 곡물의 자유로운 유통으로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가 가능해져, 곡물생산에 보다 많은 사람들과 토지가 참여하게 되고 농업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고 식량난 문제는 해소될 있다.

중농주의의 개혁 정책은 현실 정치과정에서 실제로 추진되었다. 번째는 케네와 중농주의자들이 루이 15세를 포함하는 최고 권력집단을 설득해 그들의 이론을 정치에 반영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인 1760년대에 이뤄졌다. 실쩨로, 1764년에는 곡물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는 국왕의 칙령이 발표됐다. 그러나 국왕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신분제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징세청부업자, 금융업자, 상공업자 등으로 구성된 중상주의 세력들은 중농주의자들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769년과 1770 동안 계속된 흉작으로 인한 곡물가격의 상승과 신분제 의회의 집요한 반발은 결국 1770년에 칙령폐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번째는 1774년에 국왕의 신임으로 재정장관이 튀르고(Anne-Robert-Jacques Turgot, 1727-1781) 왕실의 재정을 건전화하려는 개혁과 함께 곡물의 유통을 자유화하는 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하지만 1774년과 1775년의 연이은 흉작과 개혁으로 기득권에 위협을 느낀 귀족들과 상인 수공업자들의 공격으로 튀르고가 1776 실각함으로써 중농주의의 개혁프로그램 역시 폐기됐고 중농주의자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급격히 사라졌다.

중농주의가 중상주의에 대항해 부각된 배경에는 루이 14세의 죽음으로 그의 통치가 끝난 상황에서 프랑스가 처한 경제-사회-정치적 위기가 존재한다. 위기 상황은 중상주의 정책으로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루이 14세의 통치가 남긴 유산으로, 정부의 재정 위기와 중농주의자들이 진단한, 당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던 산업인 농업의 위기 등으로 분석할 있다.

먼저, 루이 14 치하에서 프랑스 재정상황이 악화된 이유는 루이 14세가 재위기간 동안 당시 프랑스 북부에 있던 스페인령 네덜란드와 동부에 있던 신성로마제국 등을 대상으로 '스페인 계승 전쟁'을 포함해 모두 5차례의, 영토확장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에, 배상금 지급 등을 동원하는 외교적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유럽의 질서를 프랑스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유럽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전비와 전쟁 배상금을 사용했다. 그 결과, 그의 호화로운 궁정생활로 인해 이미 어려웠던 프랑스의 재정에, 전쟁 수행 비용이 더해지면서, 그의 후계자인 루이 15세가 즉위했을 때 프랑스 정부의 부채규모는 당시 프랑스의 연간 총생산액 규모에 버금 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프랑스 재정위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프랑스의 부채 규모는 28 '리브르였고, 부채에서 발생하는 매년 지급이자의 규모는 1 23백만 리브르 수준이었다고 한다. 반면, 연간 세입규모는 1 66백만 리브르 수준이었고 공무원 임금, 군대 및 요새 유지에 소요되는 국방비 등 일반 경상세출규모는 7천백만 리브르였다. 세입과 세출의 차이인 세입 잉여금 95백만 리브르 전부를 이용해 축적된 채무의 연간 이자를 지급한다고 해도, 이자 지급에 부족한 2 8백만 리브르를 매년 차입해야 했다. 연간 생산액 혹은 정부의 총부채규모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의 부채가 매년 증가하는 셈이다. 실제로는, 상기 세입 잉여금에서 자본지출이나 전쟁비용 등 예기치 못한 지출 등을 제외한 금액만이 실제로 상기한 부채의 이자를 지급하는데 사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존 채무에 대한 이자지급을 위해 새롭게 차입해야 하는 규모도 훨씬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프랑스의 재정 수입과 지출 구조에서는 재정수지 흑자를 이용해 부채를 축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재정수지 흑자로는 이자 지급도 감당할 수 없어 부채 규모가 증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운영은 지속될 수 없다. 이 나라의 상황을 위기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지출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국방비 역시 감축했는데, 이로 인해, 루이 15세 재위 기간, 프랑스는 이웃국가들과의 전쟁에서 패전을 거듭하면서 지급해야 하는 전쟁 배상금이 급증해 오히려 재정위기가 심화됐다.

이에 덧붙여, 중농주의자들은 중상주의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농업생산의 축소와 농업 인구의 감소로 나타난 농업의 위기도 포함시켰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루이 14세가 추진한 중상주의 정책은 제조업 생산물 수출에서 발생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위해 곡물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노동자의 임금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출 경쟁력을 제고했다. 곡물가격의 통제로 농업부문의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농업생산이 축소됐고 대차지농(farmer, fermier), 반타작 소작농(sharecropping tenant, métayer), 소농(peasant, paysan) 그리고 농업 노동자(labor, travailleur) 등으로 구성된 농업 생산자들은 도시로 탈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토지를 소유한 계급인 귀족 중에서도 특히, 농촌지역에 작은 규모의 영지를 소유한 소귀족은 점점 빈곤해졌다. 반면, 농촌에 대규모 영지를 소유하면서 궁정이나 도시에 거주하던, 대귀족은 영지에서 거두어 들인 수입으로, 식량생산 증가를 위해 농업에 투자하는 대신에, 왕정으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은 상공업(예를 들면, 인도와의 무역을 독점한 la compagnie française des Indes ; 미국 루이지애나 지역의 식민지 개척과 무역을 독점한 la compagnie d’Occident) 지분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왕실이나 상공업자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하는 금융활동에 몰두했다정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증가, 그리고 식민지 개발과 왕실과 대귀족 그리고 독점 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유행한 사치생활 풍조에서 기인한 사치품 생산과 유통의 발달은 금융활동 활성화에 필요한 여건을 제공했다. 대귀족인 부재지주들이 금융활동에서 거둘 있었던 수익은 중상주의 하에서 가격제한, 유통제한, 생산제한 등으로 인해 수익율이 제한을 받은 농업에 비해 높았다. 이는 농업에 대한 투자감소를 가속화했으며, 토지의 가치상실, 농업생산의 축소, 그리고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대규모 유입을 초래했다.

부와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함으로써 발생한 농촌의 피폐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18세기 프랑스의 기반을 약화시켜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의 불안정성을 제고했다농촌에는 소규모 토지를 소유하는 영주와 이로부터 토지를 임차하는 반타작 소작인들 그리고 소농들만이 남았다. 절대군주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은 대외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상공업자와 토지소유자 중에서도 경제적 기반을 유지할 있었던 대귀족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들의 사치생활로 인해, 농업생산과 농업 생산자 유지에 사용되었어야 경제적 부가 사치재 구입에 지출됐고 이는 사치재를 생산하던 도시의 수공업자나 수입하던 상인의 소득원이 됐다. 이는 다시 농업생산에 사용되어야 재원의 축소를 의미했고 농업생산의 위축과 함께 농촌인구의 감소를 가져왔다. 요약하면, 절대왕정의 중상주의 정책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과 농업을 통해 농촌에 축적된 경제적 부를, 절대왕정으로부터 독과점 특혜를 받고 수출에 종사하는 상공업인과 도시로 이동시켰다. 이로 인해, 농촌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고 도시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대립은 곡물유통의 자유화 논의로 가시화됐다. 하지만, 곡물 자유화 논의에는 절대왕정과 대귀족 그리고 독점적 상공인으로 이뤄진 중상주의 체제에 대립하는, 중소영주인 소귀족과 농업생산자로 구성된 새로운 이익 그룹의 등장이 내재해 있었다여기서 언급된 새로운 농업생산자 그룹은 1820년대 이후 등장했다. 새로운 농업생산자의 등장은,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도입됐으나 1820년을 전후로 실패로 끝난, (John Law) 화폐개혁과 연관 있다. 은행권의 도입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로의 화폐개혁은 신용화폐가 - 본위화폐와의 경쟁에서 폐함으로써 성공하지 못한다. 신용화폐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로의 화폐체계는 당시 이자율 수준을 개혁 이전의 - 본위화폐제도 하에 비해, 크게 낮추는 성과를 남겼다. 저금리 체계에서 곡물생산은 수익성을 회복해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곡물생산에 투자하던 주체로서 대차지농 계급의 등장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중농주의는 중상주의와의 대립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곡물의 유통자유화 조치는 차례의 도입 직후 폐지됐다. 하지만 중농주의 도전을 물리친, 중상주의 체제가,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과, 프랑스는 중농주의를 실현하려던 튀르고가 1776 실각한 이후 13년만에 대혁명을 겪게 된다.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의 대립에는 식량난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 곡물의 비축과 유통을 금지하고 경작면적을 제한하는 법과 규율로 이뤄진 통치기술과 곡물의 대내외 유통 자유화와 상인의 이기심에 기반을 안전장치로 이뤄진 통치기술의 대립이 내재해 있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임금주도성장론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친노동적인 분배정책이 임금주도 경제체제와 결합되어야 하는데, 이는 50여년 동안 수출중심의 성장체제를 통해 형성됐고 유지해온 정치, 경제,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잔재의 청산을 전제한다. 점이 임금주도 성장론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by invisibleman 2017. 10. 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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