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태위기 시대, 화폐와 회계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자연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시도도 늘어난다. 탄소에는 가격이 붙고, 환경파괴는 비용으로 계산되며, 기업과 금융기관은 기후위험과 생물다양성 훼손을 투자와 신용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연을 ‘공짜’라고 가정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분명 중요한 변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자연에 적절한 가격을 붙이면 우리의 책임은 끝나는가.
숲을 훼손한 기업이 충분한 돈을 지급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기업은 숲에 대한 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일까. 습지가 파괴되었지만 다른 곳에 새로운 습지를 조성할 비용을 냈다면 두 자연은 서로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어떤 생물종이나 생태계의 파괴도 충분한 금액만 지불하면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생태위기를 단순한 ‘환경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의 문제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2. 성장의 문제에서 관계의 문제로
최근의 탈성장 논의는 이 문제를 상당히 급진적으로 제기했다. 특히 사이토 고헤이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막연한 ‘인류의 탐욕’이 아니라 끊임없는 가치증식을 요구하는 자본의 축적동학에서 찾는다.
자연에는 고유한 재생산의 시간과 한계가 있다. 숲이 자라고 토양이 회복되고 생태계가 유지되는 데에는 인간의 경제가 마음대로 단축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은 지속적인 확대를 요구한다. 이 둘의 충돌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성장은 단순히 경제규모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왜,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자본의 자기증식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공동의 부, 생태적 재생산의 조건에 맞게 다시 결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질문 하나가 남는다. 자연의 한계를 존중할 것인지 판단하고,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지 결정하며, 자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숙의하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다. 그렇다면 강과 숲, 토양과 동물, 생태계는 결국 인간이 잘 관리해야 할 대상일 뿐인가. 아니면 인간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질서를 구성하는 존재인가.
이 지점에서 생산양식의 문제는 존재양식의 문제와 만난다.
3. 자연은 인간 사회의 ‘밖’에 있는가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연과 사회의 구분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가 ‘자연주의’라고 부르는 근대 서구의 세계관은 인간에게만 주체성과 내면성을 집중시키고 비인간 자연을 인간의 이용 및 관리의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관계 맺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데스콜라는 자연을 인간 사회의 바깥에 놓은 객체로 보는 대신, 인간과 함께 관계의 질서를 구성하는 존재로 보고 그에 맞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브뤼노 라투르는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기후, 강, 숲, 생태계와 같은 존재가 인간의 결정에 의해 변화하고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들의 존속과 재생산 조건은 정치 결정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비인간 존재는 의회에 출석해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없다. 결국 과학자, 전문가, 시민단체, 공공기관 같은 인간이 그것을 대신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자연을 대표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대표하는지 계속 확인하고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스콜라와 라투르는 바로 이 점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데스콜라가 인간과 비인간이 어떤 존재로 식별되고 어떤 관계를 통해 질서를 구성하는지 묻는다면, 라투르는 그렇게 등장한 존재의 이해관계를 누가 대표하며 그 대표를 어떻게 검증하고 수정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철학과 정치가 여기까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경제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4. 철학이 바뀌어도 대차대조표가 그대로라면
어떤 사회가 “숲은 단순한 목재의 집합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하자. 은행의 대출기준과 기업의 회계장부가 그대로라면 실제 경제행위는 얼마나 달라질까.
기업은 여전히 수익과 비용을 계산한다. 은행은 어떤 사업에 신용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한다. 회계는 무엇을 자산으로 인정하고 무엇을 비용이나 부채로 기록할 것인지 규정한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꾸려면 가치관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관계를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제도적 의무로 번역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화폐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미셸 아글리에타 등이 전개한 프랑스 제도주의 화폐론은 화폐를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기록하는 제도로 본다.
이 관점에서 부채는 특히 흥미롭다.
부채에는 과거의 관계에서 발생한 의무를 현재에 남겨놓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은 이미 끝났지만 그 사건에서 발생한 의무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생태부채’라는 개념을 새롭게 읽을 가능성이 생긴다. 생태부채는 원래 환경정의와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에서 발전해온 개념이다. 이를 일반화해, 자연과의 관계에서 생긴 의무를 어떻게 시간 속에서 지속시킬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5. 돈을 냈다고 생태부채가 사라지는가
일반적인 금융채무는 돈을 갚으면 끝난다. 1억원을 빌렸다면 원리금을 상환함으로써 채권·채무관계는 소멸한다.
그러나 생태적 관계는 다르다.
토양을 훼손했다고 해서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면 건강한 토양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숲과 물, 기후와 생물다양성은 인간 사회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그 조건에 의존하는 한 그것을 유지하고 복원해야 할 의무도 계속된다.
따라서 생태부채는 ‘언젠가 청산해야 할 빚’이라기보다 ‘계속 이행해야 할 의무’에 가깝다.
생태부채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금융부채와 구별된다. 생태적 훼손의 효과는 현재와 미래에 계속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유지와 복원의 의무 역시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환경정책의 질문도 달라진다.
가격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환경정책의 한 가지 질문이 “환경파괴의 적절한 가격은 얼마인가?”였다면 여기서 제안하는 질문은 “어떤 생태적 조건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그 조건을 유지할 의무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이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가격이 파괴와 보상의 허용 범위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되기 쉽다. 가격이 충분하다면 파괴와 보상을 교환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질문에서는 일정한 생태적 한계가 먼저 정해지고, 가격은 그 한계를 지키기 위한 책임을 배분하는 도구가 된다.
7. 자연을 지킨 뒤 이익을 계산한다면
기업회계에서도 같은 사고의 전환이 가능하다.
CARE-TDL(Comprehensive Accounting in Respect of Ecology-Triple Depreciation Line)이라는 회계모델은 기존 회계에서 재무적 자본을 유지하는 원리를 인적·자연 자본의 유지로 확대하려 한다. 핵심은 자연 전체의 ‘진짜 가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과 자연의 재생산 조건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비용을 기업이 부담해야 할 선행적 의무로 보는 데 있다.
기존의 사고에서는 먼저 기업의 이익을 계산한 뒤 환경보호에 얼마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기 쉽다.
하지만 순서를 바꾼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태적 재생산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먼저 부담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고 난 뒤에 남는 것이 기업의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다.
환경보호가 이윤이 충분할 때 선택적으로 하는 ‘좋은 일’에서 기업 활동의 성립조건 자체로 바뀌기 때문이다. CARE-TDL의 정치경제적 의미 역시 자연에 가격표를 붙이는 데 있지 않고 유지와 복원을 기업의 선택적 사회공헌비용이 아닌 기업활동에 내재한 의무로 바꾸는 데 있다.
8. 화폐를 버리지 않으면서 화폐의 한계를 인정하는 법
그러나 여기서 위험한 문제가 다시 나타난다.
생태적 의무를 화폐와 회계로 표현하기 시작하면 모든 자연을 하나의 숫자로 바꾸려는 유혹이 생긴다.
숲도 100억원, 습지도 50억원, 멸종위기종도 얼마 하는 식이다.
그렇게 되면 생태부채는 오히려 “얼마를 내면 파괴해도 되는가”를 계산해주는 제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가치평가보다 앞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일부 생태적 조건은 가격에 따라 다른 자산으로 자유롭게 대체될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일정한 생물물리학적 한계는 비용편익분석에서 협상할 숫자가 아니라 경제활동이 먼저 준수해야 할 제약이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화폐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화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것이다.
화폐는 생태적 한계를 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한계 안에서 누가 어느 정도의 유지와 복원 의무를 부담할지 배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10. ‘존재-통화적 인프라’라는 제안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경제가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관계가 실제 경제에서 작동하려면 자연에 대한 의무가 기억되고, 이어지고, 지켜지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제도적 틀을 ‘존재-통화적 인프라(onto-monetary infrastructure)’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화폐‧신용‧회계의 경제제도와 연결하는 틀이다.
과거에 발생한 생태적 의무를 부채와 회계가 기억한다. 기업이나 세대가 바뀌더라도 그 의무가 사라지지 않도록 다른 주체와 미래로 이어지게 한다. 그리고 신용·회계·거버넌스를 통해 그 의무가 실제 투자와 생산의 선택을 구속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첫째는 비대체성이다. 생태적 존재와 관계는 다른 자산이나 돈으로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대표와 검증이다. 비인간 존재를 대신해 말하는 인간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전제하지 않고 새로운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논쟁, 변화된 생태적 영향을 통해 계속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존재-통화적 인프라는 ‘생태 의무를 기억하고, 대물림하며, 강제하는’ 세 가지 기능과 ‘자연을 돈으로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게 막고, 자연을 대신해 말하는 인간의 판단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두 가지 안전장치가 결합된, 생태위기시대에 부합하는 경제질서구축을 위한 틀이다.
11. 우리는 자연의 가격을 묻고 있는가, 우리의 의무를 묻고 있는가
생태위기 시대에도 가격은 필요하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복원비용을 배분하며 투자의 방향을 바꾸려면 화폐와 회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가격을 지불하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돈을 지불했다고 숲을 파괴할 권리가 생기는가. 다른 자연자본을 만들었다고 멸종된 종을 대체할 수 있는가. 복원비용을 지급했다고 자연에 대한 의무가 끝나는가.
생태위기 시대의 경제가 물어야 할 것은 자연의 정확한 가격이 아니다. 어떤 자연은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 자연에 대한 어떤 의무는 돈을 내도 끝나지 않는지, 그리고 그 의무를 기업의 회계장부와 은행의 신용배분, 국가의 정책 속에 어떻게 남겨둘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자연의 가격을 계산하는 경제에서 자연에 대한 의무를 기억하는 경제로.
생태적 전환은 아마 이 질문의 변화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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