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거침없이 지속될 것 같았던 ‘시장’의 전면적이고 일방적인 지배도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화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를 거치며 흔들리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집중 조명된 사회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시장과 금융의 지배와 이에 무력한 정치의 반성을 촉구하는‘Occupy Wall Street’운동과 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EU지역의 대중운동은 시장체제의 동요와 반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회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실질적 개혁은 미국과 EU지역 어디에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서, 미국과 유럽은 시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총기 사용이 초래하는 대량 살인, 사회적 약자를 향한 경찰의 물리적 폭력 행사, 기존의 정치지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극우정치세력을 포함해서 좌우익의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상, 근본주의와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세력의 대두 등을 겪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불평등 심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재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이는 정치, 종교 그리고 의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위기’의 어원이 담고 있듯이, 진단과 그에 따라 안정과 갈등폭발, 구원과 지옥 혹은 삶과 죽음 같이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대안 사이에서 이뤄지는 선택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위기라고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분석과 반성은, 최근 피케티의 저작 "21세기 자본"이 초래한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과 광범위한 토론의 경우에서 잘 보았듯이, 분석 도구나 기법에 대한 논쟁 아니면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제기 등으로 소모되어, 위기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 구원 그리고 삶을 선택하도록 하고자 하는 본래 목적에는 항상 혼란과 소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루기 전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이 책은 직접적으로 ‘시장’을 토대로 하는 경제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시장 혹은 경제현상에 대한 이해로 구성된 경제학에 대한 반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경제현상을 이해하려는 지적 노력의 역사인 경제학의 역사를 다시 살펴봄으로써, 현재 이뤄지고 있는 현재 경제 및 사회 체제에 대한 반성에 보다 분명한 방향성과 의미를 부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경제학의 기원에 대한 경제학사적 분석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18세기를 배경으로 시장이 초래한 혼란과 시장에서 경제력을 집중한 일부 경제주체의 전제(tyranny)로부터 사회를 구원하려는 목적을 가진 정치철학의 하위학문으로서 경제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이 책은 현재 위기상황에 관한 분석이 초래하는 논쟁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장들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사회적 전망과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데 기여할여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의 기원과 관련 있는 지적 노력이 프랑스에서 1776년에 완전히 중단된 지 13년만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근대 경제학의 기원이 되는 중농학파의 이론 탄생과 관련 있는 18세기의 경제학을 다루고 있다.  케네(François Quesnay, 1694 – 1774)의 경제표가 1756년에 그리고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국부론은 1776년에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케네가 아니라 스미스가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케네의 이론체계를 살펴보고, 어느 점에 그의 이론의 한계가 있으며, 스미스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경제적으로 표현되는 위기상황에 대한 정치적 해법이라는 관점에서, 케네와 스미스의 경제학이 모두 청치철학의 하위학문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에도 많은 비중이 주어질 것이다. 스미스의 경제학은 도덕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인 통치에 필요한 조언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그리고 케네의 경제학은 18세기 프랑스의 경제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지적 노력과 이를 바탕으로 군주를 설득해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개혁을 실시하려는 정치적 노력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강조될 것이다. 

이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18세기에 경제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8세기에 경제학이라고 하는 분과학문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 시기에 발생한 과학혁명과 자연법 사상의 유산 때문이다. 과학혁명은 17~18세기를 거치면서 과학적 사고의 진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뉴턴(Isaac Newton, 1643~1727),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를 거치며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 자연과학은 경험과 관찰에서 확인된 단순한 소수의 명제에서 출발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일련의 명제들로 구성되어 논리적 정합성이 강조되는 체계를 지향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발전은 근대 초기 인간사회의 문제 탐구에 관심을 두었던 일부 정치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이들 정치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사회의 탐구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따라서, 우주에서 자연이 유지해야 하는 혹은 물리학의 근본원칙의 적용을 받는 모든 개체가 준수해야 하는 조화로운 질서를 물리학이 보였듯이, 정치철학도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으로부터 도출되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표현하면, 만약 인간이, 자연이 그에게 부여한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개인의 활동을 사회 형성과 유지에 적합하도록 자연이 인간에 부과한 도덕 법칙을 인식하고 복종한다면, 자연은, 자연과학이 발견한 것과 유사한 조화로운 질서를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인간활동에서도 생산할 것이라고 믿었다.

과학혁명이 근대 경제학적 사고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17세기와 18세기 초반에 걸쳐 활발하게 사용된 ‘시계’ 은유다. 이 시기 자연과학을 대표한 뉴턴의 과학이 시계 은유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규칙성, 질서, 조화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상징하는 시계는 다수의 부분이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데 필요한 실례로서 태양계와 인체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이용되었다. 물론,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실질적인 원인과 궁극적인 원인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시계 은유를 사용한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고 표시하는 목적을 수행하지만, 그 목적의 실현은 시계 내부에 있는 수 많은 스프링이나 톱니바퀴 등의 기계적인 운동과 연결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개인의 보존과 인류의 번성 같은 최종 목적은 모든 개인들이 이를 의식하고 노력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이 자연법칙에 따라 그의 감정과 행동을 함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 시계 은유는 스미스 이전 경제학적 사고를 대변하는 중상주의자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케네와 스미스가 경제학의 테두리 내로 가지고 온, 윤리적, 법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해외 무역의 적절한 규제를 통해, 국가의 부를 증가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던 중상주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산업으로 지출과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세금, 포상금 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러한 정책제안도 태엽이나 톱니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조작될 수 있는 기계장치로서의 경제시스탬의 개념을 기반으로 도출되었다.

과학혁명과 함께, 18세기 경제학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자연법 사상의 발전이었다. 자연법은 이성이나 도덕감정과 같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성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정의 혹은 옳음에 대한 규칙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적 속성으로서 이성과 도덕감정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정의된 인류의 윤리적 이상을 표현한다. 자연법은 그 권위를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군주의 명령이나 의지 혹은 사회의 관습 같은 사회적 존재에서 찾지 않는다. 자연법은, 자명한 방법으로 드러나는 옳고 정당한 것에 관해 이성과 도덕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식 혹은 인식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권위를 도출한다. 따라서, 자연법은 통치자의 명령이나 관습법 혹은 정부의 입법과정을 거쳐 제정된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된다.

과학적 편향을 가진 중상주의자들이 활동한 시기에,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경제이론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즉,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정의의 개념에서 도출된 공정가격의 개념을 사전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상업거래에서 정의가 담보돼야 한다는 중세의 법학자와 교부(scholars)의 생각을 근대 초기의 자연법 법학자와 도덕이론가들은 거부했다. 대신, 이들은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경쟁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생산자가 부담해야 하는 생산비용과 시장에서 이뤄지는 판매자의 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보상 그리고 구매자가 평가하는 해당 재화의 적절한 가치 등에 상응하는 공정가격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경제현상에 적용된 자연법의 개념은 근대 경제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자연법은 중농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인간과 사회관계에 대한 경험에 이성을 적용해 발견해야 하는 정확한 규칙의 체계로, 그리고 아담 스미스에게 있어서는, ‘공정한 관객’이 느끼는 정의의 감정으로 진화했다. 

상기한 바와 같이 과학혁명과 자연법 사상의 영향으로, 초기 경제학에는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는 자연법이라는 개념과 과학적인 사회법칙의 개념이 섞여 있다. 이로 인해, 초기 경제학에서 자연과학적 방법의 적용을 통해 경제부문에서 발견해야 하는 질서와, 인류의 번영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연에 의해 규정된 경제체계를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이 법칙이 인류의 보존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의 공존은 소위 ‘경제신학’을 창조했다. 즉, 18세기 경제학은 이성의 작용을 통해 발견한 자연의 규칙에 따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개인들이 교환을 통해 맺는 관계의 결과로 형성된 사회에서는, 경제학 내에서 개인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맡은, 개인들이 생산한 상품들이 인류의 보존과 번영으로 귀결되는, 생산과 소비를 잇는 자연적인 순환을 한다는 결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하에서는, 경제학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케네와 스미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18세기 경제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경제학의 기원을 주장하는 몇 가지 관점을 살펴보고 18세기 프랑스 중농주의를 경제학의 기원으로 주장한 푸코의 입장을 다룰 것이다. 이어 제2장에서는 ‘dérogence‘ 개념을 중심으로 중농주의 등장배경을 다루는데, 당시 위기상황에 처한 프랑스에 대해 중농주의의 두 창시자인 케네와 미라보가 처방한 정치적 개혁 프로그램을 소개함으로써 경제학이 기원한 시기 정치철학과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중농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가인 케네의 경제이론을 살펴보면서, 시간적으로 스미스를 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케네가 일반적으로 경제학의 창시자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그의 이론적 결함 속에서 찾아 볼 것이다. 제4장에서는 케네가 실패한 지점을 스미스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펴보면서 경제학의 창시자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제5장에서는 스미스의 사상 전반을 입법자의 과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리하고자 한다. 제1장에서 제5장까지 18세기 경제학을 시간 축을 따라 분석했다면 제6장부터 제8장까지는 경제학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주제를 18세기 경제학의 내용을 주로 이용해 다루었다. 제6장에서는 경제학의 정의를, 제7장에서는 경제학자의 관점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8장에서는 경제주체의 개념을 다루었다.

이 글은 프랑스 파리10대학 유학 시절이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두 교수 Jean Cartelier와 Carlo Benetti에게서 배운 바를 토대로(두 선생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오류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모두 저자의 책임이다.) 내가 스스로 기획한 경제학의 기원에 대한 강의를 상상하며 쓰여졌다. 강의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읽기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각주를 최소한으로 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 책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좀 더 학습을 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책의 뒷부분에 참고문헌 목록을 추가했다.


by invisibleman 2016. 4. 4.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