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구체화된,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능력주의로 진단하고 이를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능력주의로 인해 위기에 빠진 미국 민주주의의 구원 방안을, 모든 시민들을 아우르는 사회적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삼아, 사회분업 구조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화주의 전통의 부활에서 찾고 있다. 샌델에 의하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1990년대 이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중도 좌파 및 중도 우파 정당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수용이 초래한,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소멸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1990년대 이후 선거 결과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노동자 계급의 지지가 중도좌파에서 극우 포퓰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

 

샌델이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공화주의는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선, 공화주의는 원칙적으로 자유주의다. 이와 관련해서, 샌델은 제임스 애덤스의 미국의 서사시에서 아메리칸 드림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질서의 꿈이라는 서술을 인용한다. 이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샌델에게 이상적인 사회질서의 기원은 잠재력을 발휘해 노력하는 개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 중심의 자유주의 논리에 맞서, 생산자가 구성원이 되는 공화주의 사회를 제안하면서, 샌델은 일의 존엄성과 생산자 윤리를 강조한다.

상기한 특징을 가지는, 샌델의 이상인 공화주의 사회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산자들로 구성되는데, 이 사회는 생산자들의 개별적인 노동을 상호인정을 통해 사회적 기여로 전환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샌델이 공화주의를 통해 강조한 생산자 윤리는, 샌델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능력주의와 맞설 수 있는, 시민적 미덕(civil virtue)으로서 발전한다. 시민적 미덕은 민주주의적인 조건의 평등을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소속 정치공동체에서 더 나은 공동의 삶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목적과 수단을 숙려하는 태도다. 시민적 미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간의 완벽한 평등이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존중을 받는 삶의 영역을 가진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공동의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샌델이 이상적으로 기술한 사회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산자들이 주체가 되는 공화주의 사회는 우선, 사회적 분업체계 하에서 하나의 상품생산에 전문화된 자영업자로 정의되는 경제주체들이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경제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 경제학의 역사에서 아담 스미스에 의해 도입된 사회적 분업체계는 경제주체를 특정 상품의 생산에 전문화한 독립된 생산자로 전제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산물의 교환으로 대변되는 경제주체들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도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사회적 분업체계가, 생산자들의 개별적인 노동을 상호인정을 통해 사회적 기여로 전환하는 공화주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프로젝트를 사회화 및 객관화할 수 있도록 실현하는 과정과 실현된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맑스의 경제학을 사례로 들어보자. 노동가치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v : 교환가치, l :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구체적 노동, A : 생산기술을 나타내는 투입계수들의 행렬)

행렬로 이뤄진 상기 식은 모든 사적 노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라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이는 노동가치설을 통해 맑스가 교환가치를, 시장가격이 변동을 통해서 항상 회귀하려는 지점인 균형상태에 상응하는 가치로서 전제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모든 개인의 사적 노동이 항상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라는 점은, 개인이 사회에서 분리되지도 독립되지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맑스의 이론은 공화주의 이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 이론의 분석을 좀 더 진행해 보자. 사회적 분업체계에서 생산물로 실현되는 구체적 노동의 벡터 ‘l’은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이 전문화한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경제주체들과는 독립적으로 결정해 투입한 개별 노동의 양을 나타낸다. 반면 교환가치의 벡터 ‘v’는 경제추제 혹은 생산물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통해 형성된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회적 가치를 나타낸다. 벡터 ‘l’에서 벡터 ‘v’로의 전환은 맑스가 상품의 ‘salto mortale’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 11상품섹션 3가치의 형태에서, 맑스는 상품의 ‘salto mortale’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였으나, 구체적인 개별 노동의 투입으로 생산된 사용가치가 교환과정을 통해 그리고 보편적 등가물의 도움으로 화폐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교환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일관된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역의 관계를 통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하나의 단일 상품을 이용해 표현하는 일반적 가치형태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별 경제주체들은 전개된 가치관계역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에게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 개별 생산자들이 내세운 서로 다른 일반적 등가물들이 공존하는 상태일 뿐이다. 다수의 일반적 등가물이 어떻게 하나의 일반적 등가물로 단일화하는지는 맑스의 이론에서 결여돼 있다.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 질서가 형성된다고 하는 공화주의의 근본적인 신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맑스 경제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레온 왈라스의 전통을 따르는 주류 경제학도 증명하지 못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초기 부존상태로 보유하게 된 상품의 벡터와 일관성을 갖춘 선호체계에 의해 정의된다. 그런데, 사회질서가 경제주체 간 교환관계를 통해서 형성되기 위해서는, 교환관계 이전에 경제주체 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 간에 교환 가능성이, 모든 상품에 대한 양(+)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형태로, 경제주체의 정의 이전에 이미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부존상태는 사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양(+)의 수요를 가지는 상품들로만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이미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우리는 슘페터의 기업가 경제(entrepreneurial economy)(참조: 경제발전 이론, 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 1911, 영어 번역본 1934)에서 공화주의 모델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생산수단, 자재, 생산력 등의 새로운 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새로운 제품이든, 새로운 생산방법이든 혹은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든, 기업가가 가지고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이윤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슘페터의 기업가 경제는 기본적으로 실질분석(real analysis)의 전통이 아니라 화폐분석(monetary analysis)의 전통에 속해 있다. 화폐분석의 전통에 의하면, 혁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경제주체는, 혁신을 통해 실현될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금융부문으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을 자본 삼아, 혁신을 경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금융부문의 여신심사를 거쳐 공여받은 신용을 자본처럼 사용하는 경제주체가 기업가다. 기업가가 되지 못한 경제주체는 기업가의 혁신과정에 노동자로서 참여해 노동소득을 획득해야만, 소비나 저축 등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혁신 아이디어를 금융기관에 제출하면, 금융기관은 혁신의 실현 가능성을 기반으로 심사를 해, 신용공여의 대상을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경제주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공여받은 신용을 자본 삼아, 자신의 개인 아이디어를 실제 새로운 상품, 혹은 새로운 생산방법이나 새로운 원자재 혹은 중간재를 사용해 생산한 상품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렇게 구체화된 상품은 시장가격 메카니즘을 통해 사회적으로 실현된다. 근대 경제학의 시작과 함께, 시장가격은 자연가격 혹은 교환가치와 구별되는 실제 가격으로 인식되었고, 자연가격 혹은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원칙들을 탐구하기 위해서, 베일처럼 부정되어 던져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공화주의 경제모델에서도,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특정 시점에서 특정 재화의 시장가격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에 부합하는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메카니즘은, 캉티용-스미스 메카니즘으로 알려진 것을 준용할 것이다. 이 메카니즘에 의하면, 각 재화별로 정의된 거래소에서, 특정 시점의 시장가격은, 구매력을 갖춘 수요자가 자신의 예상 가격을 토대로 계산한 수요량에 맞춰 가져온 화폐의 양과 공급자가 자신의 예산가격을 토대로 생산해 공급한 재화의 양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상기한 메커니즘을 따라 시장가격이 결정되면, 경제주체의 시장 예측을 기반으로 이뤄졌던 상품의 생산과 공급 그리고 수요가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된다. 시장의 평가 결과, 개별 수요자는 기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양의 상품을 보유하게 된다. 개별 생산자는 (+) 혹은 (-)의 화폐잔고를 가지게 된다. (-) 화폐잔고를 가지게 된 개별 경제주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공여받은 신용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다음 시점에서 (+) 화폐잔고를 약속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상환유예를 받고 다음 시기 생산 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출금을 받거나, 금융기관 대출금 상환이나 다음 시기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다음 시점에서 발생할 자신의 (+) 화폐잔고를 이용한 원리금 상환 약속을 담보로, (+) 화폐잔고를 가진 경제주체들에게 빌릴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경제모델은, 개인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개인의 행동과 상호작용 그리고 사회적 승인 과정을 거쳐 사회 전체의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논리적 모순 없이 설명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샌델에게는, 공화주의가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능력주의가 옹호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하고 있는 응분원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능력주의에 의하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경제주체의 보수는 참여한 생산과정에서 이 경제주체가 실현한 기여에 대한 응분의 대가다. 이런 생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별되는 생산요소로서 개인의 구체적 노동을 포함하는 미분가능한 생산함수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미분 계산 방법의 적용을 통해 생산에 대한 기여분을 그에 대한 대가와 일치시킬 수 있는, 노동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산함수는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개별 경제주체의 구체적 노동을 다른 경제주체의 구체적 노동과 다른 것으로 구별하면, 사적인 노동과 구별되는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적 기여에 대한 대가를 응분의 사회적 가치로 표현하는 것은 결국은 현재의 불평등한 대가 배분을 응분의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동어반복적 정당화일 뿐이다.

게다가, 응분의 대가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 차등적인 보수체계는, 비록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장치로서 유용했다고 인정하더라도, 지속가능성에 보다 큰 관심이 집중되는 현재에는, 더 이상 정당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우선, 불평등 배분을 정당화해 온 발전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심화시켰다는 반성이 존재한다. 또한, 경제구조 고도화가 이미 충분히 진행되었고, 급부상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에 비춰보면 더 이상 더 많은 생산이 정당화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슘페터의 기업가 모델에서도, 기업가는 혁신의 성공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윤 같은 성과를 지향하지 않고 혁신 자체를 즐기는 경제주체로 서술되어 있다. 기업가들에게는 성공의 성과가 아니라 성공 그 자체를 위해 성공하려는 의지가 있다라고 슘페터는 그의 경제발전 이론에서 쓰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공화주의 경제모델은 불균등분배구조를 균등분배구조로 개혁해야 하는 것을 포함해야 할 것 같다.

 

 

 
by invisibleman 2022. 6. 17. 15:17

화폐가 통용된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금이나 은처럼 물리적으로 실체를 가지는 대상이 화폐의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화폐는 상품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메인스트림 경제이론에 의하면, 화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화폐에 대한 수요가 존재해 화폐의 가치가 (+) 값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역으로 화폐의 가치가 0으로 하락해 화폐 수요가 (+) 값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화폐를 교환의 매개로 사용하고, 화폐 단위로 가격을 표시하던 화폐경제가 일시에 물물교환경제로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전개는 교환 매개로서 화폐가 상품거래의 방법을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화폐가 교환의 매개가 되는 사회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체계로 인해, 아담 스미스가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개인들이 교환을 통해서 생존하는, 다시 말해, 모두가 상인이 되는 사회다. 이런 의미에서 화폐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구조의 존재를 대변하는 제도적 장치다.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화폐는 결제체계로서 존재한다. 결제체계로서 화폐는, ① 상품의 거래를 거치지 않고 화폐가 처음으로 경제주체에게 공여되는 방식으로 생성되는 계기인 monnayge, ② 화폐가격 결정 방식이기도 한, 화폐를 이용한 상품의 거래 메카니즘, ③ monnayge 조건의 상이함과 상품 거래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상품거래 이후 (+) 화폐잔고를 가진 경제주체와 (-) 화폐잔고를 가진 경제주체의 금융거래, 그리고 ④ 상품 거래와 금융거래를 마치고 생성됐던 화폐가 소멸되는 계기 등을 포함한다.  이하에서는 상기한 네 가지 계기들을 하나씩 차례로 기술하골 것이다.

결제체계로서 화폐를 이해할 때 결제체계를 구성하는 계기들 중에서 경제시스템의 진화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monnayge다. 화폐를 교환의 매개로 이용하는 경제에서 상품의 거래는 화폐를 주고받음으로써 실현된다. 매수자는 상품 구입 전에 필요한 액수의 화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화폐를 이용한 상품거래가 조직화되려면, 상품거래 이전에, 일정 규모의 화폐가 일정 수의 경제주체들에게 공여되어야 한다. Monnayge는 상품거래 이전에 교환의 매개 경제주체에게 공여되는 과정을 개념화한 것이다. 

상품거래 전에 일정 규모의 화폐를 일부 경제주체에게 공여하는 monnayge가 화폐경제에서 중요한 이유는, monnayge를 통해 화폐를 공여받은 경제주체가 자기가 원하는 상품의 거래를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Monnayge 세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화폐와 화폐 발행의 근거가 되는 ''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는 화폐 공여의 근거가 되는, 화폐거래 이전에 일정 규모의 화폐적 가치로 인정받은 존재다. 

근대 금본위 화폐제도를 이용해 monnayge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자. 금본위제도는 화폐 단위를 일정 순도를 가진 금의 일정 무게로 정의함으로써,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고정시키는 제도다. 금본위제 하에서 monnayge는 금화를 발행하는 기관인 조폐청으로 경제주체가 보유한 금을 가지고 와서 금의 무게에 해당하는 화폐를 요구할 때 이뤄진다. 여기서 경제주체가 가지고 온 금과 이로부터 주조된 금화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록 개인주체는 언제든 보유한 금화를 녹여 금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금이 교환의 매개인 금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금본위 제도에서는 국내 혹은 국외에서 금광을 개발했거나, 다른나라로 유입되는 금을 해적질을 통해 갈취하는 것과 같은, 군사적 혹은 경제적 성공의 경험을 통해 금을 축적한 개인이 경제적 주도권을 가진다. 과거 성공을 축적한 개인이 현재 경제생활에서도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반면, 현대의 신용본위 화폐제도는 금본위 화폐제도의 보수적 성격과는 대비를 이룬다. 신용본위 화폐제도는 과거에 이룬 경제적 성공을 통해 축적된 부가 아니라 미래에 실현될 상업적 프로젝트의 성공을 부로 인정하고 평가해서 화폐의 발행이 이뤄진다. 즉, 신용본위제도에서 화폐의 발생은 금융기관이 상업 프로젝트의 수익성에 대한 기대를 근거로 공여하는 대출을 통해 이뤄진다. 상업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인정받아, 신용을 공여받은 경제주체는 대출을 통해 획득한 화폐를 이용해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투입 요소를 구매해, 재화를 생산하고 판매함으로써 사업소득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이 신용을 공여받은 경제주체가 향유하는 경제적 주도권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경제발전 이론에서 슘페터는 신용을 공여받은 경제주체를 기업가’ 그리고 공여의 대상된 신용을 자본이라고 불렀다. 

반면, 현대 신용본위 화폐제도에서 monnayge의 대상이 되지 못한 개인들은,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하도급계약이나 고용계약 등을 통해 monnayge 대상이 된 경제주체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업소득이나 근로소득을 획득하는 경우에만, 계획한 소비 혹은 저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경제주체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계기는 화폐를 이용한 판매와 구매가 이뤄지는 시장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시장은 하나의 상품이 거래되는 trading post들의 집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각 trading post에서는 거래되는 상품의 화폐가격이 결정된다. 화폐가격은 해당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되는 화폐량과 판매를 위해 시장에 공급된 상품량의 비율로서 결정된다. 

화폐를 이용하는 교환 메커니즘을 통해서, monnayge의 화폐 공여를 받은 경제주체는 다른 경제주체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상업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예상하는 판매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가격을 예측하고 생산량을 계산해 이에 필요한 생산요소를 구매하려고 monnayge를 통해 공여받은 화폐량을 지출한다. 하지만, 지출한 화폐량이 자신이 의도한 수량의 생산요소를 구입하는데 충분한지 부족한지, 그리고 그에 따라, 구입한 생산요소를 이용해 생산한 상품의 양도 처음 의도한 규모를 초월할지 아니면 그에 미치지 못할지는 동일한 생산요소를 구입하기 위해 화폐를 지출하는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의 행위에 좌우된다. 뿐만 아니라, 생산한 제품의 시장가격도 다른 경제주체들이 이 상품에 지출하기로 한 화폐의 양에 의해 좌우된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monnayge를 통해 화폐를 공여받은 경제주체는 자신이 의도한 거래를 개시할 수 있지만, 시장 가격과 거래량은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이 의도한 거래량과 지출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개별 주체들이 예상한 생산요소와 재화의 가격은 시장 메카니즘에 의해 결정된 시장 가격과는 다른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에상가격과 시장가격의 격차로 인해, 개인별 프로젝트 실현의 결과는, monnayge의 근거가 됐는 개인의 수익 전망과 거래의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평가 사이의 괴리. 즉 monnayge로 공여 받은 금액, 달리 표현하면,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초과하거나 부족한 수익으로 나타난다. 개별경제 주체들은 monnayge로 공여받은 금액을 상환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실현에도 불구하고, 공여받은 금액을 상환할 수 없게 된 경제주체는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초과한 수익을 거둔 경제주체들과 금융거래를 통해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확보해야 한다. 공여받은 금액을 상환함으로써, 발행된 화폐는 소멸된다. 금융고래로 인해 발생한 부채는, 다음 경제활동 시기에, 화폐를 공여받아, 지난 번 프로젝트의 실패를 반영하는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현해, 수익을 거둘 경우에 상환할 수 있다.

신용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결제체계에서도 상당 규모의 화폐발행은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담보 대출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은 과거 경제활동의 성과로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를 담보로 하여 화폐를 발행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담보대출과 유사한 것으로 인식되는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신용본위제도에서 monnayge인 신용을 공여하는 대출로 분류되지 못한다. 대출의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 즉 대출받은 자금을 이용해 구입하는 주택이 자체적으로 소득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택구입자금 대출의 상환은 해당 경제주체가 별도의 소득에서 확보한 재원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의미에서,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미래 소득을 앞당겨 소비한 것이다. 이미 임금 등 가계의 소득원의 수준과 비교할 때, 주택가격이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택을 구입을 위해 발생된 대출은 임금의 일부를 저축하는 방식으로 상환될 수 없다. 한 세대의 주택 구입에 소요된 대출 자금은 다음 세대가 해당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새롭게 대출을 받아야만 상환될 수 있다. 현재 화폐 발행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주택구입 자금 대출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금융부문을 구성하고 있는 통화당국과 금융기관은 젊은 세대들이 부채를 일으키도록 해서 화폐를 발행해 기성세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주거용 부동산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소유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는 임금 등 통상적인 가계소득원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부채를 일으켜야만 한다. 그 부채는 그 이후에 오는 미래세대가 다시 부채를 일으켜 해당 주거용 부동산을 더 높은 가격에 구매함으로써 상환될 수 있다. 우리 경제에서 발행되는 상당 부분의 화폐는 고용과 소득을 유발하는 목적으로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세대의 자산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발행된다. 이러한 메카니즘 자체가 지배하는 사회는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음 세대를 유혹할 수 있는, 입지의 부동산을 고르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미래의 꿈을 꿀 수 있을까.    

 

by invisibleman 2022. 2. 22. 22:51

Science sans conscience n'est que ruine de l'âme.(도덕성을 버린 과학은 영혼의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
François Rabelais (1494~1553)

바로크라는 단어가 있다. 17세기-18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유행하던, 하늘의 영광이 속세에 임하는 구체적인 장소를 거대한 돔과 풍부한 장식을 이용해 표현하던 건축양식이나, 연극적인 감동을 강조하기 위해 움직임, 감정, 대조 등을 포함하는 화화나 조각, 혹은 교향악과 오페라의 탄생을 포함하는 음악의 양식을 지칭한다. 예술의 시대구분을 지칭하는 것 외에, 바로크라는 단어는 쓸데없이 복잡하거나, 실제 용도를 초월하는 규모, 장식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바로크는 통속적 혹은 세속적이지 않거나 현세와 현재 사회를 초월하는 성격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르주와 사회와 대립하던 절대왕정과 프로테스탄트에 대립하던 카톨릭의 입장을 바로크라는 단어를 통해 기술할 수 있었다.
실제로, 태동기의 근대경제학은, 절대왕정을 신봉하거나 혹은 부르주와지와 귀족계급을 대변하는 의회의 견제를 받는 국왕이 관리하는 금고에 보관되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의 양 혹은 국민 개개인이 소비하는 재화의 양으로 측정되는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자의 과학 그리고 통치자에 대한 자문 역할을 자임했었다. 이런 역할을 통해서, 부르주아 사회를 굽어보던 경제학은, 이런 의미에서 바로크라는 수식어는 경제학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이 가장 자부해 온 과학성의 핵심을 구성하는 상품의 가치 또는 가격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경제학은 19세기 자유주의 이상향을 구현하는 모델의 역할을 해왔다. 초기 부존상품과 선호체계로 정의된 개인으로만 구성된 사회에서 개인들이 각자의 최대효용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일관성이 있는 가치 혹은 상대가격 체계 형성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가치이론은, 근대 이전 전통사회의 각종 사회적 유대, 규율에서 해방된 개인이 자율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음을 주장해온 자유주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모델의 역할을 완수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통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경제학이 통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들처럼 현재를 분석하기 위해 역사나 과거 경험에 의존하는 대신, 경제학자들은 자연과학자처럼 일반적인 법칙에 의존해,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과 예측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통치의 과학이라는 지위와 자연과학에 가장 가까운 사회과학이라는 과학성을 근거로 삼아, 경제학은 자신의 개념들을 사회화할 수 있었다.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데 필요한 경제학 개념들이 마치 일상적 경제활동을 구성하는 실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치인, 관료, 방송언론을 물론, 거의 모든 개인들이 GDP, 실업, 분배, 재분배 같은 경제학의 개념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학은 국가라는 명목을 내세워 혹은 자연과학과 가장 유사한 과학이라는 지위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경제학은 분석 기술이나 과학성의 형식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국가 혹은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빌미로, 소외되는 개인이나 계층 혹은 지속가능성의 위협을 받는 자연 및 사회 환경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무시하는 입장을 쉽게 내세운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자연과학을 모방하려는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이 이후로도 계속해서, 바로크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by invisibleman 2022. 2. 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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