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7월 24일자 정희진의 칼럼 제목'정의와 의리'는 머리 속에서 즉시 정의와 도덕의 대립으로 해석돼 버렸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은 가지 하지만 거의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다. 본성은 교환하려는 성향과 도덕감정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는 아는 감정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도덕이 형성되듯,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물건의 가치를 자신이 가진 물건과의 교환비율로 평가한 결과로 가치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인의 공감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스미스가 언급한 공정한 방관자의 공감이 없듯이, 도덕은 결코 법의 권위나 보편적 윤리 혹은 정의의 지위에 오를 없다.

동일한 논리로,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 개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의 일정 교환비율로 평가를 받은 재화의 가치가 모두 동일한 크기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가격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해당 재화의 가격은 화폐와의 교환비율이고 화폐는 다른 재화처럼 경제주체 어느 누구에 의해 생산되는 경제 내적인 존재가 아니라 바로 경제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본성이 모여 이뤄진 도덕이나 가치가 사회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은 스미스에 앞섰던 계몽주의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 계몽주의자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평화롭게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과정의 결과이자 기반인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사회계약의 내용이 바로 보편윤리 혹은 정의라고 있다스미스와는 달리 개인과는 구별되는 사회적인 것을 미리 전제해 두고 이를 근거로 개인들이 이해충돌이 발생하면 자신의 이익을 조정하고 결과 사회가 유지된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상업사회에서 사회계약의 내용은 돈으로 표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될 없는 것들이 경제 밖에 존재한다. 모든 것을 화폐단위로 평가하려고 스스로 확장하려는 경제를 제어하고 경제 밖에 존재하는 사회적 가치 혹은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정치가 맡아야 한다.

by invisibleman 2014. 7. 25.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