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의 유행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새로운 확장국면에 들어선 와중에 세계 곳곳에서 신체의 자유를 내세운 백신거부운동이 심심치않게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상황은 갑자기 최근 우리나라 SNS 상에서 일어났던, 한 재벌가의 일원에 의해 멸공(滅共)이라는 말이 주목을 받았던 사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멸공이 관심을 초래한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멸공을 같은 음을 갖는 멸공(滅公)으로 전환해 시각해보니, 연상되는 멸공봉사(滅公奉私)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대립은 그 개인이 대표하는 재벌을 한 축으로 하는, 현재 우리 사회를 구분짓는 전선에 상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기후변화를 포함하는 환경위기,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적 위기,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환경의 위기 상황에서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위기 등에 맞서, 멸사봉공과 멸공봉사는 두 가지 대립하는 지향을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환경·사회 위기 상황에서 '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으려면, 개인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효용과 수고의 계산, 이익과 비용의 계산을 통해 선택되는 행동을 아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까? 그렇지 않으면, 기업, 지역, 사회, 국가 등 사회적 존재가, 개인 선택의 합 이상의 실체와 그에 따르는 힘을 가지고 상기한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할까? 멸공봉사는 첫 번째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입장이고 멸사봉공은 두 번째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입장이다.

이해를 위한 사례로서, 요즘 대세를 이루는 단어 중 하나인 'ESG'를 들어보자.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첫 알파벳들을 모아서 만든 단어다. ESG가 대두된 배경에는, 멸공봉사 정신을 따르는 주주자본주의가 초래한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가 있다. 즉,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인 기업이 주주와 기업소유자의 이익을 위해 축적을 지속해온 결과, 주주자본주의는 환경과 사회 위기를 심화시키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의 경제활동이 멸사봉공의 정신을 따르는, 주주와 소유주 외에 종업원, 원자재 및 중간재 공급업자, 수송, 위생 등 기업활동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 제공자, 소비자, 사회 전체, 인류 전체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해관계가 결국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수렴된다 원칙을 추종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믿음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ESG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와 분리된 '개인' 그리고 그 개인의 사적 이익이라는 개념은 흔히 근대 사회를 구별짓는 특징이라고 일컫어진다. 개인의 대두가 개인주의로 귀결되면서, 개인주의와 공존해 온 근대사회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당신의 선택은 여전히 멸공봉사인가 아니면 멸사봉공인가?   

by invisibleman 2022. 1. 29.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