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은 연말이고 새해를 앞두고 있어 희망이 가득 담긴 인사말을 많이 주고 받습니다.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가난, 불화와 같은 온갖 사악한 것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악한 것들이 상자에서 빠져 나와 온세상에 퍼지고 나서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늦게 나온 것이 희망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판도라의 상자는,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푸스 산에서 훔친 불을 사용하게 된 인간에게 제우스가 내린 복수 혹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흙으로 빚어 영혼을 불어넣은 인간으로 제우스로부터 상자를 받아 보관하는 역할을 부여 받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의 성격과 희망이 판도라 상자 속에 온갖 사악한 것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희망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제우스의 복수라면 판도라의 상장 안에 봉인된 사악한 것글과 함께 인간으로부터 안전히 보관되어야 할 것인가요? 판도라의 상자가 제우스가 인간에게 내린 함정이라면, 희망은 사악한 것들이 퍼진 세상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제우스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인가요? 희망은 이데올로기처럼 인간을 기만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은 빈곤, 공포, 불안, 불하 같은 사악한 것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악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기만하는 것일까요? 최근 저는 세상과 그 질서에 저항하는 싸움으로 이뤄진, 지금까지의 제 개인적 삶이 패배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부터 새로 열리는 한 해를 또 살아내려면 희망이 필요하겠죠. 그 희망은 제가 이끌어 오고 있는 세상과 그 질서에 저항하는 싸움의 상황을 역전시켜 제가 승리하는 것으로 채워진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눈 앞에 그려지는 패배의 커다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더 시도하려는 용기를 주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주는 희망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기존의 사회와 그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회와 질서에 함께 부정적인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그로부터 소통가능한 범위 내에 위치하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인간을 만나는 것 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invisibleman 2018. 12. 31.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