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기원에 대한 서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경제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학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는 일반적으로 ‘사회가 희소한 자원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18세기에 나타나, 경제학의 기원인 된 정치경제학을 분석할 것이므로, 이에 맞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해 경제학을 정의해 보고자 한다. 

경제학의 역사를 다루는 글에서 경제학의 정의를 스미스를 인용한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 반면, 정치철학자인 홉스의 인용은 낯설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이 다루고 18세기에, 정치철학의 한 부분이 점진적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획득해 경제학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홉스를 이용해 경제학을 정의하는 것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시도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홉스는 근대 과학의 방법론을 사회 연구에 최초로 적용한 철학자였다. 즉, 홉스에 의해 사회의 자연화가 처음 시도됐다. 실제로, 자연법 혹은 정의에서 출발하는 연역적인 증명을 이용해, 사회 혹은 인간관계에 관한 판단의 과학을 시도했다. 

홉스의 작업은, 홉스가 활동하던 17세기 영국이 ‘과학혁명’의 과정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과학혁명이란, 사회의 자연화를 의미하는데, 부연하면, 과학의 발전을 반영하여 사회 역시 자연과 같은 방식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로 인해 사회가 더 이상 자연과 구별되는, 종교적 가르침 혹은 도덕적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학이 발견한 법칙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연법의 지배를 받는 자연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배경에서 탄생한 사회과학은 사회를 지배하는 자연법의 발견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자연과학과 비교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류로 정의될 수 있었다.

"리바이어던"(1651)에 포함된 홉스의 과학적 분석은, 당시 엄격한 논증의 본보기였던 데카르트의 "방법서설"(1637)을 따라, 연역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추상적 개인을 분석 단위로 설정한다. 즉, 개인들은 혈연, 지연 등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사회관계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상품으로서 교환될 수 있는 노동력을 담지 하고 있는 신체만을 소유한 존재로 정의된다. 그리고 자기보존에 필요한 재화가 충분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상적 개인은 사적 이익 추구를 동인으로 삼아 행동한다고 홉스는 전제한다. 희소하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소유해야 하는 개인들은 서로에 대해 경쟁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정의된 개인 간의 관계는 교환, 거래 등을 포괄하는 계약으로 환원될 수 있다. 즉, 사회는 개인 간 계약관계로 구성되고 사회의 윤리는 정의 같은 내용을 상실하고 단순히 교환관계를 나타내는 계약 조항에 충실해야 한다는 형식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홉스의 이러한 개인의 정의와 전제에서 경제적 인간 “Homo Economicus’의 기원을 발견 수 있다.

홉스의 이론은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해 서술할 수 있다. 두 범죄자가 어떤 사건을 모의하고 실행하였으나 둘 다 체포됐다. 체포되기 전에 두 범죄자는 서로 자백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체포 후, 이 두 범죄자는 서로 다른 취조실에 격리되어 심문을 받고 있다. 두 사람 서로 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다음의 선택이 가능하다. 둘 모두 약속을 지켜 배신하지 않고 자백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각자 6개월만 복역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만 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는 경우, 법정에서 자백을 하지 않은 범죄자의 죄를 증언하는 대가로 석방되는 반면, 자백을 하지 않은 자는 이 증언에 근거하여 유죄판결을 받고 혼자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둘 다 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는 경우, 둘 모두 5년을 복역해야 한다. 두 범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과 그에 따른 보상은 아래의 매트릭스로 표현할 수 있다.



구분                                                                                   범죄자 B

                                                          협력                                                    협력하지 않음

                                                         (자백하지 않음)                                           (자백)


                   .                                        6개월 복역.                                           무죄 방면

                      협력                6개월 복역                                               10년 복역

       (자백하지 않음)

범죄자 A


                협력하지 않음.                           10년 복역.                                               5년 복역

                     (자백)                 무죄 방면                                                  5년 복역



                                                                                                         

두 범죄자는 자백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을 동시에 내려야 하며 번복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서술한 죄수의 딜레마는 한 사람이 내린 의사결정의 결과가 다른 사람이 동시에 내리는 의사결정에 좌우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여야 할지를 설명한다.

위에 기술된 상황에서 두 범죄자는 상대방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애초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범죄자 A의 경우를 살펴보자. 범죄자 A는 범죄자 B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애초 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범죄자 B가 약속을 지키면 6개월 동안 복역하는 대신 무죄로 방면되고, 범죄자 B가 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더라도 10년 대신 5년만 복역하기 때문이다. 범죄자 B의 경우에도, 범죄자 A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당초약속을 어기고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이 딜레마는 범죄자 두 사람 모두 자백을 하고 5년을 복역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협력을 했을 때 혹은 협력을 하지 않았을 때의 보상을,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협력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도록 설계했기에, 위에서 기술된 죄수의 딜레마에서 두 범죄자 모두 협력을 하지 않고 자백을 하지 말자던 약속을 어기는 행동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두 게임 참가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서로 협력하지 않는 상황이 된다는 상기 게임의 결론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기술되는 토마스 홉스의 ‘자연상태’에 부합한다. 즉, 게임 참가자 모두가 협력하지 않는 전략을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정확하게 상응한다.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게임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는 선택인 협력을 거부하고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선택을 하는 상황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지배하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장치로서 홉스는, 개인 간 게임이 이뤄지는 시민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는 독재자 혹은 군주를 제안한다. 그에 의하면, 자연상태는 군주가 제정한, 강제력을 가진 실정법이 없는 상황으로서, 이 상태에서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서로에 대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홉스는 개인들 간의 이해대립을 조정하는 기능이 작동하는 사회는 개인들만으로는 구성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회 외부에 존재하는 다시 말해 사회를 구성하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아닌 절대 권력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스스로 조정하는 기능을 갖춘 사회의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홉스는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셈이 됐다. 반면, 스미스는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도 내재적으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모든 개인들이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도 최상의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보장하는 장치이다. 아담 스미스의 세계에서는 개인 간의 사적 이익 추구과정에서 내재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힘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다. 이를 참조한다면, 홉스의 절대자는 사회 외부에 존재하면서 개인 간의 이해대립을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보이는 손’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홉스의 결론은 두 범죄자가 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상대에 피해를 초래하는 선택인 협력하지 않기를 선택하여 심문하는 경찰에게 모든 피의사실을 자백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는 선택을 해 자백하지 않고 버텼을 경우의 복역기간인 6개월보다 좀 더 오랜 복역기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개념에 부합한다. 

같은 게임이 아담 스미스의 세계로 오면, 두 범죄자는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초에 합의한 바대로 협력하기를 선택하여 피의사실을 부인한다. 두 범죄자는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것처럼 이 선택은 두 사람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

‘죄수의 딜레마’로 불리는 동일한 게임에 적용했을 때, 왜 홉스와 스미스의 이론은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스미스의 이론에서 찾아보자. 스미스 이론에 따르면, 주체들은, 홉스 이론의 주체들에 비해, 스미스가 “도덕감성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는 ‘공감’ (sympathy) 혹은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에서는 ‘교환하려는 성향’ (propensity to exchange )이라고 불렀던 자질을 부여 받았다. 

‘동류의식’(fellow-feeling)으로도 불린 ‘공감’은 스미스에게 있어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감정이다. 한 개인이 느끼는 분노, 공포, 슬픔, 기쁨, 즐거움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도덕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자신이 관객으로서 상정한 타인의 도덕적 판단을 감안하게 되면, 모든 개인들은 감정을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과 정도를 고려하여, 각자의 감정을 조절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감’은 한 개인이 타인이 겪는 기쁨, 즐거움, 슬픔 혹은 분노 등의 감정을 그 자체로서 관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감정들을 타인이 느끼는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함으로써, 타인이 표현하는 감정에 대해 우리는 공감을 느낀다. ‘공감’이 작동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할 수 있다. 우선, 곤경에 빠진 타인을 보고, 우리는 ‘공감’작용에 의해 그가 느끼는 어려움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공감한 어려움을 당사자가 느끼는 어려움과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의 감정을 적절한 것이라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만큼 공감하고 우리가 느낀 감정은 당사자가 느낀 감정과 어느 정도는 일치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우리가 곤경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의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우리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완벽하게 같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많은 공감을 갈망한다. 즉, 타인이 공감을 통해 느끼는 아픔이 당사자인 우리가 느끼는 아픔과 부분적으로나마 일치한다는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위안을 갈망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유일한 위로가 되는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만 어려움이 초래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행한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기초가 되는 ‘공감’의 작용으로 인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동을 판단하는 타인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타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사회의 용인이 중요한 동기가 되어, 각자가 타고난 열정을 부정하거나 통제하여 사회적으로 적절한 것이 되도록 한다. 

“도덕감성론”에서 개인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이 점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빠지는 홉스의 개인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죄수의 딜레마에 등장하는 두 피의자에게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따라 공감능력을 부여하면, 두 피의자는 모두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에 협력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 자백을 하지 않는다.

“도덕감성론”에서 인간을 도덕적인 존재 혹은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공감’은 “국부론”에서는 ‘교환하려는 성향’으로 변형된다. 인간은 ‘교환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고,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나 시장으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국가의 ‘부’는 더 이상 국가를 통치하는 왕의 금고에 있는 금과 은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 개개인이 한 해 동안 소비하는 재화의 양으로 표현된다. 18세기 영국 등 서구 유럽 국가가 경험한, 급격한 부의 증가를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적 분업구조를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스미스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교환을 하고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이 이미 가능한 사회 속에서 ‘교환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개인들은 각자의 판단에 가장 많은 이익이 발생할 상품의 생산에 전념하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물건의 획득에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환하려는 성향’은 이렇게 개인으로 하여금 특정 상품생산에 전념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는 사회적 분업구조가 형성되어, 개인의 생존은 물론 사회의 유지도 확보됐다. 

이를 죄수의 딜레마에 적용하면, ‘교환하려는 성향’으로 인해 노동의 분업구조에 참가하는 개인들이 특정 상품생산에 전념하더라도 생존이 보장되는 것처럼, 죄수의 딜레마의 두 피의자는 각자 생존에 필요한 선택을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의 생존이 유지될 수 있는 선택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이익 추구에 해를 끼치는 선택인 ‘서로 협력하지 않고 경찰에 자백하기’보다는 자백을 하지 않으려는 서로의 약속에 충실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공감’ 혹은 ‘교환하려는 성향’은, 죄수의 딜레마 경우처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리고 항상 자신에게는 물론 거래 상대방에게도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장치다. 이러한 장치로 인해, 스미스의 이론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홉스의 이론에서와는 달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빠지지 않고 각자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와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은 경제주체로서 사회분업 구조에서 선택한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어려움에 대한 공감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공감은 스미스에게 있어 교환이론과 가치론의 근거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공감능력에 의해 형성된 사회 질서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주체들이 각자 생산한 제품 간의 가치들의 체계 혹은 상대가격들로 구성되는 가격시스템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의 의도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사적 이익 극대화라는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은유는 상대가격체계의 형성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수 있었다. 공감에서 출발한 스미스의 이론이 상대가격체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됨에 따라 경제학은 과학의 지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측면에서 스미스가 이룬 성취도 스미스에게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계기들 중 하나가 됐다.

홉스에서 스미스로 이어지는 전통 속에서 경제학의 탄생을 찾는 것은 경제학의 정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경제학은 사회적 질서가 홉스와는 달리,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내재적으로 주체들의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의 결과로서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가능성만으로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가지는, 사회과학에 속하는 다른 분과학문과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두 번째가 경제학의 정의와 관련하여 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두 번째는 경제학이 다루는 변수가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형성되는 개인들 간의 사회관계가 교환비율이나 가격처럼 측정될 수 있는 변수라는 점이다. 경제학의 도입과 발전의 결과로, 사회적 혹은 정치적 갈등의 해결은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교환비율이나 가격을 발견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이후로 경제학은 교환비율이나 가격을 결정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요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고유 법칙을 발견하는 것에 전문화해 왔다. 요약하면, 경제학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 인자를 포함하고 있는데,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형성과 유지를 설명한다는 점과 교환비율이나 가격처럼 측정될 수 있는 변수로 나타낼 수 있는 사회관계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by invisibleman 2017. 3. 30.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