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의 기원

쿠아론의 영화 그래비티와 아담 스미스의 그래비테이션

invisibleman 2014. 3. 3. 22:03

1.


Alfonso Cuarón 감독의 2013년 영화 Gravity가 오늘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자연과학의 단어인 Gravity는 경제학에서도 낯설지 않은 단어다. 파생어인 Gravitation와 함께. 왜냐하면, 아담 스미스는 자연가격이 시장가격을 끌어당기는 현상을 Gravitation으로 표현했고 데이빗 리카르도도 임금과 이윤의 자연적 경향을 gravitation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언급했으며 마르크스는 시장가격이 시장가치에 수렴하는 것에 단어 Gravity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Gravity와 Gravitation의 차이점은? 구글을 통해 검색한 결과에 의하면, 전자는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임의의 두 물체 간에 작용하는 끌어당기는 힘을 의미한다.


이런 정의를 반영하듯, 쿠아론의 영화 Gravity는 지구 중력에 의해 궤도운동을 하는 스페이스 셔틀에서 시작한다. 스페이스 셔틀에는 이번 비행이 끝나면 더 이상 지구를 벗어날 수 없게 된, 은퇴를 앞둔 우주비행사 매트 코왈스키와 지구 위에서는 살아 갈 유인을 상실하여 우주에서의 생활에 처음 도전한 의사 라이언 스톤이 있다.

이 두 등장인물들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무중력상태에서의 생활은 다른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안정적 상태로 지속되지 못한다. 폐기 위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주 쓰레기가 그들이 탑승한 스페이스 셔틀의 궤도운동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스페이스 셔틀을 파괴하고 코왈스키와 스톤을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스톤은 코왈스키의 도움으로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하지만 코왈스키를 잃는다. 국제우주정거장마저 우주쓰레기로 파괴될 위험에 처하자 스톤은 혼자 중국의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지구귀환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온다. 우주쓰레기가 만드는 위험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페이스 셔틀에서 국제우주정거장으로 그리고 다시 중국우주정거장으로의 이동은 생존본능의 발로로 보여졌다. 본능에서 초래된, 위험을 피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행동은 죽은 코왈스키의 음성과 라디오를 통해 지구에서 들려오는, 애기를 달래는 어느 사내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통해 스톤의 내부에서 지구 위에서 생존하려는 선택으로 전환된다.


영화 Gravity의 내용 역시 경제학의 Gravity나 Gravitation을 연상시킨다. 즉, 스톤은 스스로 자연적인 모습으로 자연상태의 지구상 어느 지점으로 귀환한 것이다. 궤도 상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스페이스 셔틀, 우주정거장, 지구귀환용 우주주선이 소멸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복마저 벗은 상태로 인간에 의한 개발 흔적이 없는 어느 한적한 호숫가에서 스톤은 복귀한 지구에서 첫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마치 우발적이고 구체적인 요인들로 인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시장가격이 결국 자연가격으로 수렴하듯이.


2.


아담 스미스의 그래비테이션은 자연가격이 시장가격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래비테이션의 개념에는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법칙과 이와는 독립적으로 자연가격을 결정하는 법칙이 있다는 전제가 내재해 있다. 즉, 자연가격이 중심이 되어 시장가격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겨 결국에는 수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가격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가격결정 메커니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시장가격과 자연가격을 지배하는 두 가지 법칙의 유기적 결합을 이끌어 내는 역할은 스미스의 시장 개념에게 맡겨져 있다.


자연가격은 상품을 시장으로 가져오기 위해, 평균적인 수준으로 지불해야 하는 임금과 이윤의 총액으로 정의된다. (단순화를 위해 지대를 생략했다.) 스미스에 의하면, 임금과 이윤의 평균적인 수준은 상품생산에 필요한 노동과 자본의 재생산을 담보하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한 경제의 모든 상품 생산에는 동일한 자연임금률과 자연이윤율이 적용된다. 자연이윤율과 자연임금률은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 사회가 보유한 자본 혹은 인구의 수준이나 수준의 증가 속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 따라, li의 노동량을 투입한 시장 출하량이 Qi0 인 상품 i의 자연가격(Pin)은 자연이윤율이 rn이고 자연임금률이 wn 인 경우,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Qi0 Pin =(1+rn)wnli


반면, 시장가격은 유효수요와 시장에 출하된 상품량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유효수요는 자연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들의 수요 혹은 한 상품의 시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구매력의 양으로 정의된다. 즉, 유효수요(Di)는 만약, 시점0에서 시장에 출하된 상품 i의 양이 Qi0인 경우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Qi0 pim= Di

유효수요의 정의로부터, 스미스가 언급한 바대로 시장가격은 유효수요와 시장 출하량의 비율로 결정된다.


그래비테이션 과정 혹은 스미스의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가격과 출하량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가격과 유효수요와의 관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앞의 식, Qi0 Pin =(1+rn)wnli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연가격과 출하량의 관계는 자연임금률과 자연이윤율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임금률과 자연이윤율을 설명하는 생산이론뿐만 아니라, 자연가격이론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스미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이론의 공백은 리카르도와 스라파를 통해 상당 부분 채워졌다.


다음으로, 자연가격과 유효수요의 관계를 살펴보자. 경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은 자본이나 노동의 소유자로 정의된다. 이들 경제주체들의 소득 혹은 부의 크기를 Rn이라 하면, 시장에 출하된 상품 i에 대한 유효수요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Di= φiRn =φi(1+rn)wnli= φiQi0 Pin


이 때, 벡터φi는 경제 전체의 지출구조로서 상품 i의 구매에 배분된 소득의 비율을 의미하는 요소로 이뤄져 있다. 그래비테이션의 문제는 시장에서 전체 소득이 상품별로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의미하는 벡터 φi가 어떻게 결정되고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문제로 전환된다.


그래비테이션의 기본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Pim(t)Qi0(t)= φiRn=constante


벡터 φi는 시장가격이 자연가격으로 끌려가는 동안 변화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벡터 φi를 변화시키는 요인은 그래비테이션 과정 동안 변하지 않는다. φiRn는 i 상품을 파는 시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유효수요의 크기를 나타낸다. 이는 i 상품시장에 배분된 소득의 크기와는 구별돼야 한다. 왜냐하면, 유효수요는 자연가격으로 정의되지만 시장별로 배분된 소득은 시장가격으로 정의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효수요는 그래비테이션 과정 동안에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시장별로 배분된 소득은 그래비테이션 동안 변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자연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를 유효수요와 시장 출하량의 대면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구매자간의 경쟁이나 상품의 성질과도 관련 짓는다.

먼저, 상품의 성질과 관련해서는, 스미스는 다음 인용처럼 언급하고 있다.

“공급초과분의 크기가 판매자들의 경쟁을 증가시키는 것에 따라 또는 그 상품을 즉시 처분하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따라, 시장가격은 자연가격보다 다소 하회할 것이다. 동일한 규모의 과잉 수입이라도 썩기 쉬운 상품의 경우가 내구상품의 경우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을 야기할 것이다. ”


하지만, 스미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하면서 상품의 교환가치를 설명함에 있어 사용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의 성질은 효용을 통해 수요곡선의 기울기를 특징짓는 수요의 탄력성이 아니라 벡터φi로 표현되는 지출구조에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연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는 지출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상품의 성질에 따라 이 지출구조가 변화하기 때문에 그래비테이션 결과는 불확실하다.


이어서 구매자 간 경쟁과 관련하여, 스미스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시장에 나오는 양이 유효수요를 초과한다면, 그 상품은 임금과 이윤의 가치총액을 지불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판매될 수 없다. 일부는 보다 적게 지불하려는 사람들에게 판매되어야 하며, 그들이 지불하는 낮은 가격이 상품 전체의 가격을 인하시킬 수 밖에 없다.”


이 구절은 한 상품의 모든 거래에는 단일한 가격이 적용된다는 가정의 선택 유무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단일가격 가정을 선택한 경우에는, 상품 출하량이 유효수요를 초과하여 낮아진 가격은 해당 상품의 모든 거래량에 적용돼야 한다. 따라서 스미스가 언급한 바에 의하면, 시장이 처음 열렸을 때 제시된 가격은 시장가격과 다르다. 이는 결국 왈라스의 암중모색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해석은 모든 변수가 실제적이고 유효한 것인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유일하게 가능한, 단일가격 가정을 포기한 경우에는, 어떤 상품시장에는 차이가 나는 다수의 우발가격에서 동시에 거래가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경우, 유효수요와 출하량의 비율로서 정의된 시장가격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연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결정된 우발가격들의 평균가격과 일치하게 된다.

다수의 우발가격은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부문 내에서 다수의 임금률과 이윤율을 내포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는 서로 다른 생산 분문에서의 임금률과 이윤율의 차이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산부문 내에서의 임금률과 이윤율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렇게 복잡성이 증가한 결과 그래비테이션 과정은 단순히 자연 임금률 및 이윤율과 시장 임금률 및 이윤율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효수요는 시장이 열리기 전에 시장과정과는 독립된 요인에 의해 미리 결정된 경제 전체의 지출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즉, 유효수요는 시장에서 시장가격이 결정되기 전에, 자연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에 근거해 경제의 지출구조에 따라 배분된 구매력으로 정의됐다. 따라서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 상품시장으로 배분된 유효수요는, 시장에서 자연가격이 시장가격을 끌어 당기는 동안에, 변하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래비테인션 개념은 시장과정과는 별개로 사전적으로 규정된 균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개인들의 활동의 조화로운 합으로 규정되는 사회는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결정과는 별개로, 그리고 개인들의 결정 이전에 이미 세워져 있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유효수요를 결정하는, 시장 외부에 존재하는, 시장의 권력분산적 성격에 대비되는, 권력집중적 성격의 기관을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가격, 자연임금률 혹은 자연이윤율에 포함된 ‘자연’은 시장과 독립적으로 상기한 권력집중적 기관에 의해 사전적으로 결정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전파 경제학에서, 자연가격이 시장가격을 끌어당기는 그래비테이션은 이러한 가정 하에서 가능하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과 노동의 소유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가 구성되는 것을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를 통해 표현했다. 하지만, 동등한 개인들의 상호작용이라는 권력분산적 성격의 시장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은 오히려 권력집중적인 기관의 존재를 전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보았다.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권력집중적 기관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외면이 ‘아담 스미스의 오류’ 혹은 ‘경제신학’이라는 표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