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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을 옹호하는 경제학 모델: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를 읽고

invisibleman 2022. 6. 17. 15:17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구체화된,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능력주의로 진단하고 이를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능력주의로 인해 위기에 빠진 미국 민주주의의 구원 방안을, 모든 시민들을 아우르는 사회적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삼아, 사회분업 구조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화주의 전통의 부활에서 찾고 있다. 샌델에 의하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1990년대 이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중도 좌파 및 중도 우파 정당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수용이 초래한,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소멸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1990년대 이후 선거 결과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노동자 계급의 지지가 중도좌파에서 극우 포퓰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

 

샌델이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공화주의는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선, 공화주의는 원칙적으로 자유주의다. 이와 관련해서, 샌델은 제임스 애덤스의 미국의 서사시에서 아메리칸 드림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질서의 꿈이라는 서술을 인용한다. 이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샌델에게 이상적인 사회질서의 기원은 잠재력을 발휘해 노력하는 개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 중심의 자유주의 논리에 맞서, 생산자가 구성원이 되는 공화주의 사회를 제안하면서, 샌델은 일의 존엄성과 생산자 윤리를 강조한다.

상기한 특징을 가지는, 샌델의 이상인 공화주의 사회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산자들로 구성되는데, 이 사회는 생산자들의 개별적인 노동을 상호인정을 통해 사회적 기여로 전환함으로써 유지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샌델이 공화주의를 통해 강조한 생산자 윤리는, 샌델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능력주의와 맞설 수 있는, 시민적 미덕(civil virtue)으로서 발전한다. 시민적 미덕은 민주주의적인 조건의 평등을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소속 정치공동체에서 더 나은 공동의 삶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목적과 수단을 숙려하는 태도다. 시민적 미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간의 완벽한 평등이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존중을 받는 삶의 영역을 가진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공동의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샌델이 이상적으로 기술한 사회를 경제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산자들이 주체가 되는 공화주의 사회는 우선, 사회적 분업체계 하에서 하나의 상품생산에 전문화된 자영업자로 정의되는 경제주체들이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경제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 경제학의 역사에서 아담 스미스에 의해 도입된 사회적 분업체계는 경제주체를 특정 상품의 생산에 전문화한 독립된 생산자로 전제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산물의 교환으로 대변되는 경제주체들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도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사회적 분업체계가, 생산자들의 개별적인 노동을 상호인정을 통해 사회적 기여로 전환하는 공화주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프로젝트를 사회화 및 객관화할 수 있도록 실현하는 과정과 실현된 결과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맑스의 경제학을 사례로 들어보자. 노동가치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v : 교환가치, l :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구체적 노동, A : 생산기술을 나타내는 투입계수들의 행렬)

행렬로 이뤄진 상기 식은 모든 사적 노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라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이는 노동가치설을 통해 맑스가 교환가치를, 시장가격이 변동을 통해서 항상 회귀하려는 지점인 균형상태에 상응하는 가치로서 전제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모든 개인의 사적 노동이 항상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라는 점은, 개인이 사회에서 분리되지도 독립되지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맑스의 이론은 공화주의 이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 이론의 분석을 좀 더 진행해 보자. 사회적 분업체계에서 생산물로 실현되는 구체적 노동의 벡터 ‘l’은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이 전문화한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경제주체들과는 독립적으로 결정해 투입한 개별 노동의 양을 나타낸다. 반면 교환가치의 벡터 ‘v’는 경제추제 혹은 생산물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통해 형성된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회적 가치를 나타낸다. 벡터 ‘l’에서 벡터 ‘v’로의 전환은 맑스가 상품의 ‘salto mortale’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 11상품섹션 3가치의 형태에서, 맑스는 상품의 ‘salto mortale’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였으나, 구체적인 개별 노동의 투입으로 생산된 사용가치가 교환과정을 통해 그리고 보편적 등가물의 도움으로 화폐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교환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일관된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역의 관계를 통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하나의 단일 상품을 이용해 표현하는 일반적 가치형태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별 경제주체들은 전개된 가치관계역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에게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 개별 생산자들이 내세운 서로 다른 일반적 등가물들이 공존하는 상태일 뿐이다. 다수의 일반적 등가물이 어떻게 하나의 일반적 등가물로 단일화하는지는 맑스의 이론에서 결여돼 있다.

개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 질서가 형성된다고 하는 공화주의의 근본적인 신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맑스 경제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레온 왈라스의 전통을 따르는 주류 경제학도 증명하지 못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초기 부존상태로 보유하게 된 상품의 벡터와 일관성을 갖춘 선호체계에 의해 정의된다. 그런데, 사회질서가 경제주체 간 교환관계를 통해서 형성되기 위해서는, 교환관계 이전에 경제주체 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 간에 교환 가능성이, 모든 상품에 대한 양(+)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형태로, 경제주체의 정의 이전에 이미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부존상태는 사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양(+)의 수요를 가지는 상품들로만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이미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우리는 슘페터의 기업가 경제(entrepreneurial economy)(참조: 경제발전 이론, 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 1911, 영어 번역본 1934)에서 공화주의 모델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생산수단, 자재, 생산력 등의 새로운 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새로운 제품이든, 새로운 생산방법이든 혹은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든, 기업가가 가지고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이윤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슘페터의 기업가 경제는 기본적으로 실질분석(real analysis)의 전통이 아니라 화폐분석(monetary analysis)의 전통에 속해 있다. 화폐분석의 전통에 의하면, 혁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경제주체는, 혁신을 통해 실현될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금융부문으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을 자본 삼아, 혁신을 경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금융부문의 여신심사를 거쳐 공여받은 신용을 자본처럼 사용하는 경제주체가 기업가다. 기업가가 되지 못한 경제주체는 기업가의 혁신과정에 노동자로서 참여해 노동소득을 획득해야만, 소비나 저축 등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혁신 아이디어를 금융기관에 제출하면, 금융기관은 혁신의 실현 가능성을 기반으로 심사를 해, 신용공여의 대상을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경제주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공여받은 신용을 자본 삼아, 자신의 개인 아이디어를 실제 새로운 상품, 혹은 새로운 생산방법이나 새로운 원자재 혹은 중간재를 사용해 생산한 상품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렇게 구체화된 상품은 시장가격 메카니즘을 통해 사회적으로 실현된다. 근대 경제학의 시작과 함께, 시장가격은 자연가격 혹은 교환가치와 구별되는 실제 가격으로 인식되었고, 자연가격 혹은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원칙들을 탐구하기 위해서, 베일처럼 부정되어 던져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공화주의 경제모델에서도,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특정 시점에서 특정 재화의 시장가격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에 부합하는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메카니즘은, 캉티용-스미스 메카니즘으로 알려진 것을 준용할 것이다. 이 메카니즘에 의하면, 각 재화별로 정의된 거래소에서, 특정 시점의 시장가격은, 구매력을 갖춘 수요자가 자신의 예상 가격을 토대로 계산한 수요량에 맞춰 가져온 화폐의 양과 공급자가 자신의 예산가격을 토대로 생산해 공급한 재화의 양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상기한 메커니즘을 따라 시장가격이 결정되면, 경제주체의 시장 예측을 기반으로 이뤄졌던 상품의 생산과 공급 그리고 수요가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된다. 시장의 평가 결과, 개별 수요자는 기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양의 상품을 보유하게 된다. 개별 생산자는 (+) 혹은 (-)의 화폐잔고를 가지게 된다. (-) 화폐잔고를 가지게 된 개별 경제주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공여받은 신용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다음 시점에서 (+) 화폐잔고를 약속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상환유예를 받고 다음 시기 생산 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출금을 받거나, 금융기관 대출금 상환이나 다음 시기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다음 시점에서 발생할 자신의 (+) 화폐잔고를 이용한 원리금 상환 약속을 담보로, (+) 화폐잔고를 가진 경제주체들에게 빌릴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경제모델은, 개인의 이니셔티브를 존중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개인의 행동과 상호작용 그리고 사회적 승인 과정을 거쳐 사회 전체의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논리적 모순 없이 설명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샌델에게는, 공화주의가 능력주의에 대한 대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능력주의가 옹호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하고 있는 응분원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능력주의에 의하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경제주체의 보수는 참여한 생산과정에서 이 경제주체가 실현한 기여에 대한 응분의 대가다. 이런 생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별되는 생산요소로서 개인의 구체적 노동을 포함하는 미분가능한 생산함수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미분 계산 방법의 적용을 통해 생산에 대한 기여분을 그에 대한 대가와 일치시킬 수 있는, 노동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산함수는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개별 경제주체의 구체적 노동을 다른 경제주체의 구체적 노동과 다른 것으로 구별하면, 사적인 노동과 구별되는 사회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적 기여에 대한 대가를 응분의 사회적 가치로 표현하는 것은 결국은 현재의 불평등한 대가 배분을 응분의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동어반복적 정당화일 뿐이다.

게다가, 응분의 대가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 차등적인 보수체계는, 비록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장치로서 유용했다고 인정하더라도, 지속가능성에 보다 큰 관심이 집중되는 현재에는, 더 이상 정당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우선, 불평등 배분을 정당화해 온 발전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심화시켰다는 반성이 존재한다. 또한, 경제구조 고도화가 이미 충분히 진행되었고, 급부상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에 비춰보면 더 이상 더 많은 생산이 정당화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슘페터의 기업가 모델에서도, 기업가는 혁신의 성공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윤 같은 성과를 지향하지 않고 혁신 자체를 즐기는 경제주체로 서술되어 있다. 기업가들에게는 성공의 성과가 아니라 성공 그 자체를 위해 성공하려는 의지가 있다라고 슘페터는 그의 경제발전 이론에서 쓰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공화주의 경제모델은 불균등분배구조를 균등분배구조로 개혁해야 하는 것을 포함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