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경제학이 탄생한 배경
18세기에 경제학이라는 분과학문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 시기에 발생한 과학혁명과 자연법 사상의 유산에 힘 입은 바가 크다.
과학혁명은 17~18세기를 거치면서 과학적 사고의 진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뉴턴(Isaac Newton, 1643~1727),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를 거치며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 자연과학은 경험과 관찰에서 확인된 단순한 소수의 명제에서 출발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일련의 명제들로 구성되어 논리적 정합성이 강조되는 체계를 지향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발전은 근대 초기 인간사회의 문제 탐구에 관심을 두었던 일부 정치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다. 이들 정치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사회의 탐구에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따라서, 우주에서 자연이 유지해야 하는 혹은 물리학의 근본원칙의 적용을 받는 모든 개체가 준수해야 하는 조화로운 질서의 존재를 물리학이 증명하였듯이, 정치철학도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 가능한 인간사회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생각을 달리 표현하면, 만약 인간이, 자연이 그에게 부여한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개인의 활동을 사회 형성과 유지에 적합하도록 자연이 인간에 부과한 도덕 법칙을 인식하고 복종한다면, 자연은, 자연과학이 발견한 것과 유사한 조화로운 질서를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인간활동에서도 생산할 것이라는 믿음이 된다.
과학혁명이 근대 경제학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17세기와 18세기 초반에 걸쳐 활발하게 사용된 ‘시계’ 은유다. 이 시기 자연과학을 대표한 뉴턴의 과학이 시계 은유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학이 시계 은유를 여러번 반복해서 사용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규칙성, 질서, 조화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상징하는 시계는 태엽, 스프링, 톱니바퀴 같은 다수의 부품이 상호작용을 통해, 시간 흐름을 측정하는 기구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태양계와 인체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이용되었다.
물론,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실질적인 원인과 궁극적인 원인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시계 은유를 사용한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고 표시하는 목적을 수행하지만, 그 목적의 실현은 시계 내부에 있는 수 많은 스프링이나 톱니바퀴 등의 기계적인 운동과 연결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개인의 보존과 인류의 번성 같은 최종 목적은 모든 개인들이 이를 의식하고 노력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법칙에 따라 개인이 쾌 혹은 불쾌의 감정을 느끼고 불쾌는 회피하고 쾌를 추구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
시계 은유는 스미스 이전 경제학적 사고를 대표하는 중상주의자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상주의자들은 케네와 스미스가 경제학의 틀 안으로 가지고 온, 윤리적, 법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해외 무역의 적절한 규제를 통해, 국가의 부를 증가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들이 원하는 산업으로 지출과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세금, 포상금 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러한 정책제안은, 쾌락을 초래하는 요인인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성향을 기본 부품으로 이루어져 조작될 수 있는 기계장치로서의 경제 시스탬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도출되었다.
과학혁명과 함께, 18세기 경제학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자연법 사상의 발전이었다. 자연법은 이성이나 도덕감정과 같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성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정의 혹은 옳음에 대한 규칙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적 속성으로서 이성과 도덕감정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정의된 인류의 윤리적 이상을 표현한다. 자연법은 그 권위를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군주의 명령이나 의지 혹은 사회의 관습 같은 사회적 존재에서 찾지 않는다. 자연법은, 자명한 방법으로 드러나는 옳고 정당한 것에 관해 이성과 도덕감정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식 혹은 인식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권위를 도출한다. 따라서, 자연법은 통치자의 명령이나 관습법 혹은 정부의 입법과정을 거쳐 제정된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된다.
과학적 편향을 가진 중상주의자들이 활동한 시기에,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경제이론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즉,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정의의 개념에서 도출된 공정가격의 개념을 사전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상업거래에서 정의가 담보돼야 한다는 중세의 법학자와 교부(scholars)의 생각을 근대 초기의 자연법 법학자와 도덕이론가들은 거부했다. 대신, 이들은 많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경쟁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생산자가 부담해야 하는 생산비용과 시장에서 이뤄지는 판매자의 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보상 그리고 구매자가 평가하는 해당 재화의 적절한 가치 등에 상응하는 공정가격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경제현상에 적용된 자연법의 개념은 중상주의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근대 경제학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자연법은 중농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인간과 사회관계에 대한 경험에 이성을 적용해 발견해야 하는 정확한 규칙의 체계로, 그리고 아담 스미스에게 있어서는, ‘공정한 관객’이 느끼는 정의의 감정으로 진화했다.
상기한 바와 같이 과학혁명과 자연법 사상의 영향으로, 초기 근대 경제학에는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는 자연법이라는 개념과 과학적인 사회법칙의 개념이 섞여 있다. 이로 인해, 초기 경제학에서 자연과학적 방법의 적용을 통해 경제부문에서 발견해야 하는 질서와, 인류의 번영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연법에 의해 규정된 경제체계를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이 법칙이 인류의 보존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의 공존은, ‘보이지 않는 손’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소위 ‘경제신학’을 창조했다. 즉, 이성의 작용을 통해 발견한 자연의 규칙에 따라 개인은 이익을 추구해야 하나, 동시에 생존을 개인들 간에 형성되는 교환관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개인들 간 관계의 매개체인, 개인들이 생산한 상품들이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자연적인 순환을 하면 이것이 인류의 보존과 번영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서 18세기 경제학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